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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민족은 고마운데, 배달 라이더는 싫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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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846회 작성일 20-09-1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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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은 애증의 단어가 됐다. 코로나19 위협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한 집에서 갓 배달된 따끈한 음식을 건네받을 땐 이보다 더 고마운 서비스가 어딨나 싶지만, 인도 차도 할 것 없이 아무 데서나 불쑥 튀어나오는 배달 오토바이를 마주칠 때면 사나운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적대감이 든다. 그런데 이상한 건, 고마움은 ‘배달의민족’으로 대표되는 음식 주문 플랫폼과 배달원 모두를 향하지만, 증오는 배달원 홀로 뒤집어쓴다는 점이다. 배달이 야기하는 사회 문제를 다룬 기사 아래에는 돈에 혈안 돼 교통법규는 가뿐히 무시하고, 고객의 치킨을 한 조각 훔쳐 먹기도 하는 배달원의 비양심을 질타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리나 플랫폼에 대한 지적은 상대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는 ‘배달’이란 단어에서 플랫폼과 배달원을 분리해 애(愛)와 증(憎)의 대상을 좀 더 균형 있게 설정하도록 돕는 책이다. 맥도날드, 우버이츠, 쿠팡이츠, 동네 배달대행, 배민라이더스를 두루 경험한 배달원이자 현직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인 지은이 박정훈은 4년간 플랫폼 안팎에서 일하며 온몸으로 파악한 ‘플랫폼 자본주의’의 실체를 독자에게 배달한다.
노동절을 앞둔 지난 4월 29일 서울 강남대로에서 라이더유니온 조합원이 총회와 오토바이 행진을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희석 작가(미디어 데모스)
노동절을 앞둔 지난 4월 29일 서울 강남대로에서 라이더유니온 조합원이 총회와 오토바이 행진을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희석 작가(미디어 데모스)
‘디지털 임대업’ 기반이자 노동자 착취 도구 된 ‘데이터’
‘독점적 지위를 획득해 음식을 주문하고 싶은 사람도, 음식을 판매하고 싶은 사람도 반드시 이 정거장(platform)을 거치게 만든 다음 입장료를 걷는 것’. 지은이가 규정한 플랫폼의 작동 원리이자 목표다. 배달의민족으로 대표되는 주문 중개 플랫폼은 복날에 치킨 쿠폰을 뿌린다. 더 많은 ‘디지털 단골’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대대적 마케팅을 펴려면 자본이 필요한 법. 이 돈은 다국적 자본이 댄다.(지난해 독일에 본사를 둔 딜리버리히어로가 배달의민족을 인수하면서 ‘게르만민족’이 됐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지만 이 별명은 부정확하다. 딜리버리히어로의 최대주주는 남아공 투자회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더 많은 손님과 더 많은 음식점이 집결하면 플랫폼은 이들이 공급하는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확보하게 된다. 배달의민족 앱 다운로드 횟수는 지난 3월 기준 5400만회. 앱 이용자가 무심결에 제공하는 정보는 빅데이터로 응집돼 “이번 달 당신이 치킨을 시켜먹을 확률을 당신보다 더 정확히 맞출 수도 있”다. 빅데이터의 역할은 단순 예측에 그치지 않는다. 이 데이터는 ‘디지털 임대업’의 기반이 되어 돈을 벌어오기도 하고, 노동자를 채찍질하는 도구가 되어 자본 ‘낭비’를 줄이기도 한다. 양방향으로 플랫폼의 자산 축적에 기여하는 셈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배달의민족은 손님이 음식점을 검색하면 가까운 동네 음식점이 노출되게 만들었다. 음식점은 노출 비용을 내야 하는데, 이것을 ‘깃발’이라고 부른다. 이 임대료가 월 8만 8000원이다.” 이 때문에 깃발 꽂기에 한 달에 100만∼200만원씩 쓰는 치킨집 사장이 있을 정도로 치킨 게임식 출혈 경쟁이 빚어진다. 거꾸로 플랫폼에는 바로 이 점이 수익원이 된다. (배달의민족은 지난 4월 자본력을 갖춘 자영업자가 깃발을 독점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가게 당 깃발 3개만을 허용하는 개선책을 내놨다. 그러나 수수료 책정 문제와 연동한 이 안에 반대 여론이 거세 현재는 모든 개선안이 백지화된 상태다.)
플랫폼의 데이터 독점 탓에 노동자를 채찍질하는 방식도 더 교묘해졌다. 쉬지 말고, 더 빠르게 배달하라고 닦달하는 건 사람이 아니라 데이터이고, 데이터를 의식하는 노동자 자신이다. “가령 내비게이션에 나온 도착 예정 시간이 15분인 곳을 배민 라이더가 신호 위반과 과속, 자기만이 아는 지름길과 골목길을 통해서 7분30초 만에 도달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실제로는 20명쯤이 필요한 일을, 초인적인 노동을 하는 배민 라이더 10명이면 충분하다는 데이터로 뽑아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데이터화·알고리즘화된 노동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며 중립적이라는 환상을 만든다.” 이 말은, 배달원이 더 효율적으로 일할수록 더 가혹한 노동환경이 펼쳐질 수 있다는 뜻이다. 데이터를 만드는 데 기여한 배달원을,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든 알고리즘이 압박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빚어지는 것이다. ‘쿠팡이츠’ 계약서에는 ‘배송기사에 대한 배송서비스 평가 결과가 회사가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 앱 접속 권한을 상실·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는데, 정확한 미달 기준이 공개되지 않아 배달원은 한도 끝도 없이 불안감에 시달리며 자신을 채찍질하기도 한다. 이 채찍질의 끝에 교통사고가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18∼24살 청년 산재 사망 원인 1위는 배달이었다. (한정애 의원·2016∼2018년 조사) 주문 수, 라이더 수, 날씨 등의 다양한 변인에 따라 알고리즘이 책정하는 극도로 유연한 급여(배달료) 체계, 배달원이 어디에 있는지 ‘중계’돼 소비자에게 “노동과정 감시자이자 사용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현상 역시 지은이가 꼽는 플랫폼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위원장. 라이더유니온 제공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위원장. 라이더유니온 제공
한국형 플랫폼 노동이 특히 더 위험한 이유
플랫폼 자본주의 확산으로 노동이 토막 나고 휘어지는 건 전 지구적 현상이지만, 한국에선 그 정도가 더 심하다. 4자를 중개하는 독특한 방식과, 취약한 노동권 때문이다. ‘우버이츠’ 같은 외국의 음식 배달 플랫폼은 3자(음식점-배달원-손님)를 중개하지만, 한국은 배달의민족 같은 주문 중개 플랫폼과 ‘생각대로’‘부릉’같은 배달 대행 플랫폼 2개가 얽혀 4자(음식점-배달 대행 업체-배달원-손님)를 중개한다. 플랫폼과 배달기사의 거리가 “두 번 멀어지는 셈”이다.
이 ‘거리감’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배달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배달원은“계약서엔 사장님, 일할 땐 직원”인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여서 보험료와 수리비, 유류비를 모두 본인이 부담한다. 그러나 배달원용 보험(유상운송보험)은 1년에 최소 400만원, 많게는 800만원에 달할 정도로 보험료가 비싸서 가입하지 않는 이가 많고, 오토바이 수리는 표준공임단가도 형성되지 않아 “부르는 게 값”이다. 여기에 오토바이 면허가 따로 없어(1종 보통 자동차 면허만 따면 125㏄이하 이륜차를 운전할 수 있다) 주유구조차 찾지 못하는 초보가 적지 않고, 배달 대행업체 역시 누구나 창업할 수 있는 ‘자유업’이어서 자격 미달 업체가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 상황이라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종합하면 충분히 정비·수리받지 않은 오토바이를, 충분한 운전 경력 없는 배달원이, 충분한 안전교육도 받지 못한 채 타고 달리고 있다는 말이 된다. ‘안전’ 문제를 오롯이 배달원 개인에게만 맡겨온 결과는 이토록 참담하다. 지은이가 플랫폼과 사회의 책임을 강조하는 이유다.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인 그는 주중엔 노조에서, 주말엔 맥도날드에서 일한다. 쿠팡이츠나 배민커넥트에서 틈날 때마다 배달도 한다. 그는 <한겨레>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소비자는 모르는, 또 몰라도 되는‘주문 버튼’ 이후의 중간과정과 구조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배달 서비스에 들어가지만 사회는 책임지지 않고 배달원 개인에게 전가되는 그 모든 비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이 책을 스타트업 업계의 얘기를 주로 듣는 관료들과 정책 입안자, 경제지 기자가 꼭 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본격화하고 있는 ‘알고리즘’의 노동자 지휘·감독에 대해서도 우려를 내비쳤다. 지휘·감독 여부는 노동자의 근로자성을 입증하는 주요 근거다. “비교적 명백하게 지휘·감독이 이뤄졌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알고리즘이 강제 배차하고 이를 거부하면 다음번 배차를 지연시키는 등의 불분명한 방식으로 작업 지시가 이뤄집니다. 또 각종 ‘프로모션’으로 작업을 유인하기에 노동자의 ‘선택’으로 보일 가능성도 크고요. 알고리즘을 상대로 근로자성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가 눈앞에 놓여 있습니다.”
인터뷰 중 그는 “책에 쓴 이야기도 이제 과거가 되어버렸다”고 했다. 플랫폼은 생물처럼 매 순간 변화하고 있기에 이 책은 플랫폼의 ‘오늘’을 완벽하게 포착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닌다. 이처럼 시시각각 극단적으로 변화하는 것 또한 플랫폼의 속성이다. 오토바이의 폭주가 플랫폼의 시간을 따라잡기 위한 몸부림으로도 읽히는 이유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62652.html?_fr=mt1#csidx5ba2757b01e1a8cb2a4df4d22377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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