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의 정치 인사이드]권력을 쥐고 돈까지 갖고 싶었던 ‘586’의 시대는 종말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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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총선 압승으로 ‘주류 교체’의 승기를 잡은 듯 보였던 민주당이
불과 1년 만에 다시 광야로 내몰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조국 사태’로 도덕적 상징 자본을 잃었고,
‘LH 사태’가 터지면서 적폐 청산의 유통기한도 끝났다
‘민주화 엘리트’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학생운동권의 지도부였던 일부 엘리트들은 20대부터 엄청난 상징 자본을 얻었다. 그 후 30년 이상 정치적 엘리트의 삶을 누렸던 그들의 시대가 종말을 맞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민주화 엘리트의 페르소나가 벗겨진 것은 아이러니다. 역시 역경을 이기긴 쉬워도 풍요를 이기긴 어려운 것인가.
2019년 9월 나는 ‘조국의 위기, 여당의 오판, 정치의 몰락’이란 칼럼에서 “한국의 대표적 셀럽이자 ‘강남 좌파’의 상징인 조국 때문에 온 나라가 사실상 내전 상태다…겉으로는 개혁이나 정의 같은 명분으로 포장되어 있어도 속으로는 전략 자산을 총동원한 ‘586 엘리트’의 기득권 전쟁이다…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2011년에 <강남 좌파>라는 책에서 강남 좌파 논쟁의 본질은 ‘이념’이 아니라 ‘엘리트’ 논쟁이라고 날카롭게 통찰했다…강남은 모두가 갖고 싶고, 닮고 싶은 세련된 매력을 상징한다. 학벌, 부, 권력을 모두 가진 사람이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고 사회적 이슈에 대해 진보적 목소리를 내는 순간 ‘강남 좌파’라는 이 시대 최고의 상징 자본을 손에 넣었다. 조국 사태는 강남 좌파와 586 엘리트가 오랫동안 감춰온 위선과 욕망의 민낯을 드러냈다…통찰은 부족하고, 성찰도 없으니 ‘현찰’만 쫓는 게 586 엘리트가 세상을 사는 방식이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한다. 강남 좌파든, 강남 우파든 이념이 아니라 대한민국 0.1%의 엘리트가 사는 방식이 문제의 핵심이다. 노무현 대통령 때까지만 해도 ‘깨끗하지만 무능한 진보’와 ‘유능하지만 부패한 보수’의 프레임이 작동했지만 지금은 둘 다 무능하고 둘 다 부패했다. 대한민국의 비극이다”라고 썼는데 2021년 4월 지금은 더 절망적이다.
“자기가 가진 것을 사랑하면 행복하고 못 가진 것을 사랑하면 불행하다”는데 보수·진보를 떠나 엘리트의 불행은 ‘못 가진 걸 사랑한’ 욕망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9월30일 확대비서관회의에서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말했다. 세상 누구도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더욱 그렇다. 부와 권력을 손에 넣은 그가 도덕까지 가지려고 한 것은 지나친 탐욕이었다.
그가 만일 “나는 어려서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뭐든 했다. 건설회사의 대표로 일할 때도 요즘 기준으로는 용인되기 어려운 수단과 방법도 동원한 것이 사실이다. 그때는 모두가 그렇게 살던 시절이었지만 이제 와서 보니 부끄럽다. 그러나 내가 비록 도덕적으로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 한 것만은 자부한다”고 했다면 덜 미움 받았을 것이다. 그의 가장 큰 죄(?)는 마땅히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도덕적 권위마저 가지려 한 것이다.
이명박은 피에르 부르디외가 <구별 짓기>에서 말한 ‘아비투스’를 위해 돈, 권력, 도덕 순으로 ‘상징 자본’을 얻으려 했다. 그는 물질적 권위에 만족하지 않았다. 도덕적 권위도 갖고 싶었다.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부를 축적한 젊은 기술자들이 사상가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돈이 많고 기술을 이해한다고 지혜가 더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진리로 받아들인다. 다니엘 부어스틴이 <이미지와 환상>에서 통찰한 대로 “옛날에는 위대하면 유명해졌지만 지금은 유명하면 위대해진다”고 믿는 시대다.
‘586 민주화 엘리트’들은 이명박과는 반대로 도덕, 권력, 돈의 순으로 상징 자본을 쟁취했다. 그들 역시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갖지 못한 것에 집착했다. 이미 권력, 정의, 명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돈마저 갖고 싶었다. 양귀자의 소설 제목처럼 금지된 것을 소망했다. 그들이 금단의 과실을 따 먹는 순간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지지자들은 부패의 상대적 크기로 옹호하는 모양이지만 그들은 도덕을 상징 자본으로 정치를 했기 때문에 그건 일종의 사기죄다.
한국 철학을 연구한 일본의 오구라 기조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조선시대 지식인의 이미지 유형(선비, 사대부, 양반)으로 오늘날 한국 정치의 부도덕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선비’는 권력과 부를 가까이하는 것을 거부하고 오로지 학문의 세계에 침잠하여 이상(도덕)을 추구하는 자다. 퇴계 이황이 대표적 인물이다. ‘사대부’는 관료이자 지식인이다. 권력을 지향하지만 부와는 선을 긋는다. ‘사림’이나 ‘신진사류’ 등이 주자학을 받아들이면서 수구세력과 전면전을 벌였는데 이들이 전형적인 사대부의 이미지다. 율곡 이이가 대표적 인물이다. ‘양반’은 도덕과 권력에 부까지 거머쥔다. 기득권의 상징으로 오늘날 대부분 정치인의 원형이다. 586 민주화 엘리트가 걸어온 길을 오구라 기조의 기준으로 보면 ‘286’은 재야의 선비였고, ‘386’ ‘486’은 개혁적 사대부였으나 ‘586’은 타락한 양반이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은 도덕 지향성 국가다…그렇다고 해서 한국인이 언제나 도덕적으로 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도덕 지향성’과 ‘도덕성’은 다른 것이다. ‘도덕 지향성’은 사람들의 모든 언동을 도덕적으로 환원하여 평가한다…유교에서는 도덕과 권력과 부는 이상적으로는 삼위일체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절망적일 정도로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도덕은 권력과 부와 결합되는 순간 쉽게 부도덕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도덕 쟁탈전이 전개된다. 이것은 도덕을 내세워 권력을 잡은 세력이 얼마나 도덕적이지 않은가를 폭로하는 싸움이다”라고 갈파했다.
오구라 기조 눈에는 정신적 권위와 물질적 권위를 모두 가지려고 하는 것은 조선(한국)이 ‘하나의’ 이(理)를 장악한 세력이 도덕, 권력, 돈을 모두 차지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도덕적 쟁투에서 이기면 모든 것을 얻고, 지면 모든 것을 잃는다. 민주화 엘리트들이 ‘적폐 청산’ 같은 도덕적 슬로건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25년 전쯤 라디오에서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으로 문장을 만들어보라는 진행자의 주문에 한 청취자가 “일본은 독도가 그려진 지도는 가질 수 있으나 독도는 가질 수 없다”고 재치 있게 답해 우승을 차지했다. 사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 직업적 정체성이 강한 사람은 직업윤리도 엄격하다.
오래전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는데
놀랍게도 아직도 개혁의 주체인 양하는
586 민주화 엘리트들은 무능·위선·부패의 상징이 됐다
미래에 대한 통찰이 없고,
현재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으니
정치는 허구한 날 과거와 싸운다…
4·7 재·보선도 과거와 싸우고 있다
4월7일 누가 승자가 되든지
그 결과가 내년 대선의 결과를 알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주류 권력을 향한 쟁투의 시작을 알릴 뿐
사람들이 상징 자본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해주는 ‘아비투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헤겔이 말한 ‘인정 투쟁’의 밑천(?)이다. 나는 오래전에 헤겔 해석의 권위자인 알렉상드르 코제브의 <헤겔 독해 입문: 정신현상학 강의>를 통해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접한 후 금방 매료되었다. 헤겔과 코제브는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기 시작한 1989년에 발표한 논문 <역사의 종말>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정치 질서의 기원>에서 씨족 국가가 부족 국가로 발전하고, 부족 국가가 도시 국가로 발전한 것은 동서양이 같은데 “중국은 기원전에 통일을 이루었는데 왜 서양은 19세기까지 분열되었을까”라는 도발적 질문을 던졌다. 그는 국가 건설의 경로를 가른 중요한 이유로 종교를 들었다. 서양에서는 제사장이 왕권을 제약했다. 오래도록 황제의 권력도 교황에 의해 견제됐다. 반면 중국의 ‘천자’는 황제와 교황의 권력을 모두 갖고 있었다.
훗날 서양에서는 법이 종교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근대 정치제도의 3요소인 국가·법치주의·책임정부를 통해 ‘강한 국가’를 구축했다. 그러나 중국이나 조선은 가부장제가 만든 가산제 때문에 ‘강한 사회’를 구축하지 못해 ‘강한 국가’로 나아가지 못했다.
고대 이스라엘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제사장·선지자의 권위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었다. 물질적 권위와 정신적 권위가 분산되었다. 오늘날 왕은 세속적 권위, 즉 기업인, 정치인, 군인, 관료 같은 사람이다. 제사장은 종교인, 법조인이다. 선지자는 언론인, 학자, 작가, 시민운동가 등 지식인이다. 강한 국가를 지탱하는 강한 사회는 돈, 권력, 도덕(지식)의 권위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586 민주화 엘리트들은 무능·위선·부패의 상징이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재야의 선비’도 아니고, ‘개혁적 사대부’도 아니다. 그저 돈과 자리만 탐하는 ‘타락한 양반’일 뿐이다. 정치는 비즈니스가 됐다. 제사장과 선지자의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들도 모두가 돈과 권력을 찾아 부나방처럼 날아든다. 모두가 ‘업’에는 관심 없고, 오직 ‘직’에만 눈독을 들인다. 정체성이 약하니 윤리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다. 이미 오래전에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는데도 아직도 개혁의 주체인 양 행세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던 민주화 엘리트들의 약속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정신적 권위의 몰락과 민주주의 시스템의 붕괴로 돌아왔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지식인, 언론, 시민운동가, 학자들은 침묵을 넘어 부끄러움도 없이 어용과 사쿠라를 자처한다. 그 결과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한 강한 국가·강한 사회는 붕괴되고 있으며 공동체는 해체되고 있다. 극단적 진영 정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우석훈 교수, 김세연 전 의원과의 대담집 <리셋 대한민국>에서 “근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중요한 작동원리가 삼권분립인데 그중 사법부는 과거에 벌어진 사건들을 심판하고, 행정부는 현재의 일을 처리하고 오직 입법부, 즉 정치만이 내일을 준비하면서 미래에 대한 제도를 마련하는 일을 한다”고 했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세계가 우주 이주를 말하는데 우리는 100년 전 토착왜구와 빨갱이 타령이다. 미래에 대한 통찰도 없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으니 과거를 놓고 싸운다.
‘조국 사태’로 도덕적 상징 자본을 잃었고, ‘LH 사태’로 적폐 청산의 유통기한도 끝났다. 역사학자 E H 카는 “필연은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고 했는데 LH 사태는 이미 널리 퍼진 유증기에 불을 붙였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3년 동안은 야당이 정권을 비판하면 “다 맞는 말인데 당신들이 할 말은 아니지”라는 반응을 보였던 사람들이 지금은 국민의힘 오세훈·박형준을 비판하는 민주당에 그 말을 그대로 돌려준다. 에토스가 무너지면 로고스, 파토스도 힘을 잃는다. 메신저가 신뢰를 잃으면 메시지는 들리지 않는다.
앨버트 허시먼은 <Exit, Voice, and Loyalty - 이탈, 항의, 충성>에서 기업이나 조직, 국가가 퇴보할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를 연구했다. 조직이 싫으면 남아서 항의하거나, 떠나거나, 아니면 충성하거나 셋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선거는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대안을 찾아 이탈하고, 대안이 없더라도 기권함으로써 투표로부터 이탈할 수 있다. 2017년에는 중도보수가 보수 정당으로부터 이탈했는데 지금은 중도진보가 민주당을 떠나고 있다.
선거에서 35% 대 55%는 매우 중요한 수치다. 최근 거의 모든 조사는 야당 지지가 55%를 넘고 있고, 여당 지지는 35%를 밑돌고 있다. 적극적 정권 심판론에 (민주당으로부터 이탈한) 소극적 정권 견제론이 가세하고 있다. 읍소와 투표 독려로 되돌리기 쉽지 않은 형국이다. 지난 총선 압승으로 ‘주류 교체 전쟁’에서 결정적 승기를 잡은 듯 보였던 민주당이 불과 1년 만에 상징 자본을 다 잠식당하고 다시 광야로 내몰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이 지면에서 경영 전략가인 짐 콜린스가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 말한 5단계로 보수 정당의 위기를 설명해왔는데 오늘은 민주당에 들려주어야겠다. 그는 한때 세계 시장을 지배했던 위대한 기업의 몰락을 1단계: 성공으로부터 자만심이 생겨나는 단계, 2단계: 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내는 단계, 3단계: 위기 가능성을 부정하는 단계, 4단계: 구원을 찾아 헤매는 단계, 5단계: 유명무실해지거나 생명이 끝나는 단계로 구분했다.
민주당은 3단계를 넘어 4단계로 진입 중이다. 국민의힘도 여전히 4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다. 4월7일 누가 승자가 되든지 그 결과가 내년 대선의 결과를 알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주류 권력을 향한 새로운 도덕적 쟁투가 시작되려고 한다.
▶박성민
[박성민의 정치 인사이드]권력을 쥐고 돈까지 갖고 싶었던 ‘586’의 시대는 종말로 향하고 있다
1991년 설립한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대표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컨설턴트다. 30년 이상 선거를 치르면서 익힌 감각과 예리하고 독창적인 시각을 평가받고 있다. 정치게임에서 승리하는 법칙을 담은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 <정치의 몰락>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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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년 만에 다시 광야로 내몰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조국 사태’로 도덕적 상징 자본을 잃었고,
‘LH 사태’가 터지면서 적폐 청산의 유통기한도 끝났다
‘민주화 엘리트’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학생운동권의 지도부였던 일부 엘리트들은 20대부터 엄청난 상징 자본을 얻었다. 그 후 30년 이상 정치적 엘리트의 삶을 누렸던 그들의 시대가 종말을 맞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민주화 엘리트의 페르소나가 벗겨진 것은 아이러니다. 역시 역경을 이기긴 쉬워도 풍요를 이기긴 어려운 것인가.
2019년 9월 나는 ‘조국의 위기, 여당의 오판, 정치의 몰락’이란 칼럼에서 “한국의 대표적 셀럽이자 ‘강남 좌파’의 상징인 조국 때문에 온 나라가 사실상 내전 상태다…겉으로는 개혁이나 정의 같은 명분으로 포장되어 있어도 속으로는 전략 자산을 총동원한 ‘586 엘리트’의 기득권 전쟁이다…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2011년에 <강남 좌파>라는 책에서 강남 좌파 논쟁의 본질은 ‘이념’이 아니라 ‘엘리트’ 논쟁이라고 날카롭게 통찰했다…강남은 모두가 갖고 싶고, 닮고 싶은 세련된 매력을 상징한다. 학벌, 부, 권력을 모두 가진 사람이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고 사회적 이슈에 대해 진보적 목소리를 내는 순간 ‘강남 좌파’라는 이 시대 최고의 상징 자본을 손에 넣었다. 조국 사태는 강남 좌파와 586 엘리트가 오랫동안 감춰온 위선과 욕망의 민낯을 드러냈다…통찰은 부족하고, 성찰도 없으니 ‘현찰’만 쫓는 게 586 엘리트가 세상을 사는 방식이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한다. 강남 좌파든, 강남 우파든 이념이 아니라 대한민국 0.1%의 엘리트가 사는 방식이 문제의 핵심이다. 노무현 대통령 때까지만 해도 ‘깨끗하지만 무능한 진보’와 ‘유능하지만 부패한 보수’의 프레임이 작동했지만 지금은 둘 다 무능하고 둘 다 부패했다. 대한민국의 비극이다”라고 썼는데 2021년 4월 지금은 더 절망적이다.
“자기가 가진 것을 사랑하면 행복하고 못 가진 것을 사랑하면 불행하다”는데 보수·진보를 떠나 엘리트의 불행은 ‘못 가진 걸 사랑한’ 욕망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9월30일 확대비서관회의에서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말했다. 세상 누구도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더욱 그렇다. 부와 권력을 손에 넣은 그가 도덕까지 가지려고 한 것은 지나친 탐욕이었다.
그가 만일 “나는 어려서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뭐든 했다. 건설회사의 대표로 일할 때도 요즘 기준으로는 용인되기 어려운 수단과 방법도 동원한 것이 사실이다. 그때는 모두가 그렇게 살던 시절이었지만 이제 와서 보니 부끄럽다. 그러나 내가 비록 도덕적으로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 한 것만은 자부한다”고 했다면 덜 미움 받았을 것이다. 그의 가장 큰 죄(?)는 마땅히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도덕적 권위마저 가지려 한 것이다.
이명박은 피에르 부르디외가 <구별 짓기>에서 말한 ‘아비투스’를 위해 돈, 권력, 도덕 순으로 ‘상징 자본’을 얻으려 했다. 그는 물질적 권위에 만족하지 않았다. 도덕적 권위도 갖고 싶었다.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부를 축적한 젊은 기술자들이 사상가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돈이 많고 기술을 이해한다고 지혜가 더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진리로 받아들인다. 다니엘 부어스틴이 <이미지와 환상>에서 통찰한 대로 “옛날에는 위대하면 유명해졌지만 지금은 유명하면 위대해진다”고 믿는 시대다.
‘586 민주화 엘리트’들은 이명박과는 반대로 도덕, 권력, 돈의 순으로 상징 자본을 쟁취했다. 그들 역시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갖지 못한 것에 집착했다. 이미 권력, 정의, 명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돈마저 갖고 싶었다. 양귀자의 소설 제목처럼 금지된 것을 소망했다. 그들이 금단의 과실을 따 먹는 순간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지지자들은 부패의 상대적 크기로 옹호하는 모양이지만 그들은 도덕을 상징 자본으로 정치를 했기 때문에 그건 일종의 사기죄다.
한국 철학을 연구한 일본의 오구라 기조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조선시대 지식인의 이미지 유형(선비, 사대부, 양반)으로 오늘날 한국 정치의 부도덕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선비’는 권력과 부를 가까이하는 것을 거부하고 오로지 학문의 세계에 침잠하여 이상(도덕)을 추구하는 자다. 퇴계 이황이 대표적 인물이다. ‘사대부’는 관료이자 지식인이다. 권력을 지향하지만 부와는 선을 긋는다. ‘사림’이나 ‘신진사류’ 등이 주자학을 받아들이면서 수구세력과 전면전을 벌였는데 이들이 전형적인 사대부의 이미지다. 율곡 이이가 대표적 인물이다. ‘양반’은 도덕과 권력에 부까지 거머쥔다. 기득권의 상징으로 오늘날 대부분 정치인의 원형이다. 586 민주화 엘리트가 걸어온 길을 오구라 기조의 기준으로 보면 ‘286’은 재야의 선비였고, ‘386’ ‘486’은 개혁적 사대부였으나 ‘586’은 타락한 양반이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은 도덕 지향성 국가다…그렇다고 해서 한국인이 언제나 도덕적으로 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도덕 지향성’과 ‘도덕성’은 다른 것이다. ‘도덕 지향성’은 사람들의 모든 언동을 도덕적으로 환원하여 평가한다…유교에서는 도덕과 권력과 부는 이상적으로는 삼위일체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절망적일 정도로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도덕은 권력과 부와 결합되는 순간 쉽게 부도덕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도덕 쟁탈전이 전개된다. 이것은 도덕을 내세워 권력을 잡은 세력이 얼마나 도덕적이지 않은가를 폭로하는 싸움이다”라고 갈파했다.
오구라 기조 눈에는 정신적 권위와 물질적 권위를 모두 가지려고 하는 것은 조선(한국)이 ‘하나의’ 이(理)를 장악한 세력이 도덕, 권력, 돈을 모두 차지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도덕적 쟁투에서 이기면 모든 것을 얻고, 지면 모든 것을 잃는다. 민주화 엘리트들이 ‘적폐 청산’ 같은 도덕적 슬로건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25년 전쯤 라디오에서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으로 문장을 만들어보라는 진행자의 주문에 한 청취자가 “일본은 독도가 그려진 지도는 가질 수 있으나 독도는 가질 수 없다”고 재치 있게 답해 우승을 차지했다. 사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 직업적 정체성이 강한 사람은 직업윤리도 엄격하다.
오래전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는데
놀랍게도 아직도 개혁의 주체인 양하는
586 민주화 엘리트들은 무능·위선·부패의 상징이 됐다
미래에 대한 통찰이 없고,
현재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으니
정치는 허구한 날 과거와 싸운다…
4·7 재·보선도 과거와 싸우고 있다
4월7일 누가 승자가 되든지
그 결과가 내년 대선의 결과를 알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주류 권력을 향한 쟁투의 시작을 알릴 뿐
사람들이 상징 자본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해주는 ‘아비투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헤겔이 말한 ‘인정 투쟁’의 밑천(?)이다. 나는 오래전에 헤겔 해석의 권위자인 알렉상드르 코제브의 <헤겔 독해 입문: 정신현상학 강의>를 통해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접한 후 금방 매료되었다. 헤겔과 코제브는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기 시작한 1989년에 발표한 논문 <역사의 종말>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정치 질서의 기원>에서 씨족 국가가 부족 국가로 발전하고, 부족 국가가 도시 국가로 발전한 것은 동서양이 같은데 “중국은 기원전에 통일을 이루었는데 왜 서양은 19세기까지 분열되었을까”라는 도발적 질문을 던졌다. 그는 국가 건설의 경로를 가른 중요한 이유로 종교를 들었다. 서양에서는 제사장이 왕권을 제약했다. 오래도록 황제의 권력도 교황에 의해 견제됐다. 반면 중국의 ‘천자’는 황제와 교황의 권력을 모두 갖고 있었다.
훗날 서양에서는 법이 종교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근대 정치제도의 3요소인 국가·법치주의·책임정부를 통해 ‘강한 국가’를 구축했다. 그러나 중국이나 조선은 가부장제가 만든 가산제 때문에 ‘강한 사회’를 구축하지 못해 ‘강한 국가’로 나아가지 못했다.
고대 이스라엘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제사장·선지자의 권위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었다. 물질적 권위와 정신적 권위가 분산되었다. 오늘날 왕은 세속적 권위, 즉 기업인, 정치인, 군인, 관료 같은 사람이다. 제사장은 종교인, 법조인이다. 선지자는 언론인, 학자, 작가, 시민운동가 등 지식인이다. 강한 국가를 지탱하는 강한 사회는 돈, 권력, 도덕(지식)의 권위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586 민주화 엘리트들은 무능·위선·부패의 상징이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재야의 선비’도 아니고, ‘개혁적 사대부’도 아니다. 그저 돈과 자리만 탐하는 ‘타락한 양반’일 뿐이다. 정치는 비즈니스가 됐다. 제사장과 선지자의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들도 모두가 돈과 권력을 찾아 부나방처럼 날아든다. 모두가 ‘업’에는 관심 없고, 오직 ‘직’에만 눈독을 들인다. 정체성이 약하니 윤리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다. 이미 오래전에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는데도 아직도 개혁의 주체인 양 행세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던 민주화 엘리트들의 약속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정신적 권위의 몰락과 민주주의 시스템의 붕괴로 돌아왔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지식인, 언론, 시민운동가, 학자들은 침묵을 넘어 부끄러움도 없이 어용과 사쿠라를 자처한다. 그 결과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한 강한 국가·강한 사회는 붕괴되고 있으며 공동체는 해체되고 있다. 극단적 진영 정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우석훈 교수, 김세연 전 의원과의 대담집 <리셋 대한민국>에서 “근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중요한 작동원리가 삼권분립인데 그중 사법부는 과거에 벌어진 사건들을 심판하고, 행정부는 현재의 일을 처리하고 오직 입법부, 즉 정치만이 내일을 준비하면서 미래에 대한 제도를 마련하는 일을 한다”고 했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세계가 우주 이주를 말하는데 우리는 100년 전 토착왜구와 빨갱이 타령이다. 미래에 대한 통찰도 없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으니 과거를 놓고 싸운다.
‘조국 사태’로 도덕적 상징 자본을 잃었고, ‘LH 사태’로 적폐 청산의 유통기한도 끝났다. 역사학자 E H 카는 “필연은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고 했는데 LH 사태는 이미 널리 퍼진 유증기에 불을 붙였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3년 동안은 야당이 정권을 비판하면 “다 맞는 말인데 당신들이 할 말은 아니지”라는 반응을 보였던 사람들이 지금은 국민의힘 오세훈·박형준을 비판하는 민주당에 그 말을 그대로 돌려준다. 에토스가 무너지면 로고스, 파토스도 힘을 잃는다. 메신저가 신뢰를 잃으면 메시지는 들리지 않는다.
앨버트 허시먼은 <Exit, Voice, and Loyalty - 이탈, 항의, 충성>에서 기업이나 조직, 국가가 퇴보할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를 연구했다. 조직이 싫으면 남아서 항의하거나, 떠나거나, 아니면 충성하거나 셋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선거는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대안을 찾아 이탈하고, 대안이 없더라도 기권함으로써 투표로부터 이탈할 수 있다. 2017년에는 중도보수가 보수 정당으로부터 이탈했는데 지금은 중도진보가 민주당을 떠나고 있다.
선거에서 35% 대 55%는 매우 중요한 수치다. 최근 거의 모든 조사는 야당 지지가 55%를 넘고 있고, 여당 지지는 35%를 밑돌고 있다. 적극적 정권 심판론에 (민주당으로부터 이탈한) 소극적 정권 견제론이 가세하고 있다. 읍소와 투표 독려로 되돌리기 쉽지 않은 형국이다. 지난 총선 압승으로 ‘주류 교체 전쟁’에서 결정적 승기를 잡은 듯 보였던 민주당이 불과 1년 만에 상징 자본을 다 잠식당하고 다시 광야로 내몰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이 지면에서 경영 전략가인 짐 콜린스가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 말한 5단계로 보수 정당의 위기를 설명해왔는데 오늘은 민주당에 들려주어야겠다. 그는 한때 세계 시장을 지배했던 위대한 기업의 몰락을 1단계: 성공으로부터 자만심이 생겨나는 단계, 2단계: 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내는 단계, 3단계: 위기 가능성을 부정하는 단계, 4단계: 구원을 찾아 헤매는 단계, 5단계: 유명무실해지거나 생명이 끝나는 단계로 구분했다.
민주당은 3단계를 넘어 4단계로 진입 중이다. 국민의힘도 여전히 4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다. 4월7일 누가 승자가 되든지 그 결과가 내년 대선의 결과를 알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주류 권력을 향한 새로운 도덕적 쟁투가 시작되려고 한다.
▶박성민
[박성민의 정치 인사이드]권력을 쥐고 돈까지 갖고 싶었던 ‘586’의 시대는 종말로 향하고 있다
1991년 설립한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대표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컨설턴트다. 30년 이상 선거를 치르면서 익힌 감각과 예리하고 독창적인 시각을 평가받고 있다. 정치게임에서 승리하는 법칙을 담은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 <정치의 몰락>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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