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되돌아본 덩샤오핑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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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연구의 석학인 에즈라 보걸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그의 저서 <덩샤오핑 평전>에서 일본을 방문해 깊은 인상을 준 외국 지도자가 3명 있었다고 언급했다. 한 명은 1960년에 방문했던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이고, 다른 한 명은 1978년 방일했던 덩샤오핑이며, 나머지 한 명은 1998년 방문했던 김대중 대통령이다.
이들 중 일본에 가장 저자세였던 사람은 덩샤오핑이다. 중국 역사상 최고 지도자로서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일왕을 만났던 덩은 중국을 하루빨리 문화대혁명의 그늘에서 건져내고 개혁·개방 정책으로 이끌고 싶었다. 따라서 그는 일본과의 협력 강화를 원했다. 이를 통해 일본이 중국에 더 많은 자본을 투자하고 기술과 기업 관리 분야에서 교류 및 협력 증진을 얻어내려 하였다.
하지만 당시도 지금처럼 중·일 간에는 역사 인식의 차이와 영토 분쟁이 민감한 현안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덩은 방문 당시 기자회견에서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 열도) 분쟁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된다. 그는 준비한 답을 차분히 내놓았다. 중·일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양국 정부가 영토 분쟁 문제를 후대사람들에게 넘기자. 우리 세대의 지혜가 부족해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으나 후세들은 훨씬 총명하여 능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덩은 나아가 방문 기간 내내 일본을 높이고 끊임없이 칭찬했다. 덩이 당시 중국인들 사이에서 팽배했던 민족주의적 반일감정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 또한 군국주의 일본의 만행에 대한 역사적 억울함이 없을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덩은 외교가 당당한 ‘감정’의 만족이 아닌, 냉철한 ‘국익’의 계산임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평행선을 달리는 역사 인식과 영토 분쟁의 문제를 양보하는 것이 아닌, 다른 한편에 그대로 쌓아둔 반면 경제 분야에서는 협력을 강화시키는 외교력을 보였다. 투트랙(two-track) 외교의 교과서적 사례였다.
당시 미국 다음으로 자본과 기술에서 앞서있던 일본에 대한 덩의 투트랙 접근은 아이러니하게도 32년 후 경제 규모에서 중국이 일본을 앞지르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덩의 후세들은 국제사회가 인식하는 G2의 한 축으로 올라섰고 저자세였던 한국 및 일본과 협력도 하지만 종종 압박을 가하고 민족적 반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런데 거침없던 중국에 동북아 지역에서 안보적 우려가 생겼다. 미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이유로 한·미 및 미·일 동맹을 강화하는데 중국의 시각에서는 미국의 표적이 아무래도 북한이 아닌 중국 같았다. 또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동아시아 미사일방어체계(MD) 구축을 위해 일본에 이어 한국의 참여를 종용하고 나아가 한·중·일 3국 동맹을 추구하는 것 같았다.
중국은 전략적으로 한국을 끌어당겨보았으나 한국은 사드를 배치했다. 압박을 했더니 반중 감정이 일어 한·미 동맹을 재평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미국은 놓치지 않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성사시켰다.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했다. 한국이 MD와 한·미·일 3국 동맹으로 기울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우려는 기우였다. 역사인식 문제로 한·일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으며 지금의 한·일관계로는 미국의 목표 달성이 요원해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에 대한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감소했다.
나날이 격화되는 미·중 간 전략적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한 한국이 주권과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종종 강대국의 눈치도 살펴야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후세에 ‘굴욕 외교’로 평가받지 않으려면 한국 스스로 전략적 가치를 높이고 국력을 증진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누구도 덩의 대일외교를 굴욕이라 표현하지 않는 이유다.
한국이 스스로 전략적 가치를 높이는 첫 단추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다. 아베 전 총리와 유사한 스가 총리의 최근 한국 현안 관련 발언으로 본다면 한·일관계에 당분간 변화가 나타나기는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한·일 전문가들이 상호 이익을 위해 양국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계속 강조하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이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한·일관계의 개선을 요구한다면, 후일 아베의 ‘승계’를 넘어 자신의 정치력을 높인 스가 총리가 한국정책에서 어떠한 변화를 보일지 아직 알 수 없다. 한국은 대일 외교에서 투트랙의 원칙을 견지하고, 일본 내 전문가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미국의 지지를 얻는 장기적인 노력을 일관되게 유지해야 할 것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9180300085&code=990100#csidx895bd521e7bcd038269b199ec2f25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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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 일본에 가장 저자세였던 사람은 덩샤오핑이다. 중국 역사상 최고 지도자로서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일왕을 만났던 덩은 중국을 하루빨리 문화대혁명의 그늘에서 건져내고 개혁·개방 정책으로 이끌고 싶었다. 따라서 그는 일본과의 협력 강화를 원했다. 이를 통해 일본이 중국에 더 많은 자본을 투자하고 기술과 기업 관리 분야에서 교류 및 협력 증진을 얻어내려 하였다.
하지만 당시도 지금처럼 중·일 간에는 역사 인식의 차이와 영토 분쟁이 민감한 현안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덩은 방문 당시 기자회견에서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 열도) 분쟁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된다. 그는 준비한 답을 차분히 내놓았다. 중·일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양국 정부가 영토 분쟁 문제를 후대사람들에게 넘기자. 우리 세대의 지혜가 부족해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으나 후세들은 훨씬 총명하여 능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덩은 나아가 방문 기간 내내 일본을 높이고 끊임없이 칭찬했다. 덩이 당시 중국인들 사이에서 팽배했던 민족주의적 반일감정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 또한 군국주의 일본의 만행에 대한 역사적 억울함이 없을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덩은 외교가 당당한 ‘감정’의 만족이 아닌, 냉철한 ‘국익’의 계산임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평행선을 달리는 역사 인식과 영토 분쟁의 문제를 양보하는 것이 아닌, 다른 한편에 그대로 쌓아둔 반면 경제 분야에서는 협력을 강화시키는 외교력을 보였다. 투트랙(two-track) 외교의 교과서적 사례였다.
당시 미국 다음으로 자본과 기술에서 앞서있던 일본에 대한 덩의 투트랙 접근은 아이러니하게도 32년 후 경제 규모에서 중국이 일본을 앞지르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덩의 후세들은 국제사회가 인식하는 G2의 한 축으로 올라섰고 저자세였던 한국 및 일본과 협력도 하지만 종종 압박을 가하고 민족적 반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런데 거침없던 중국에 동북아 지역에서 안보적 우려가 생겼다. 미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이유로 한·미 및 미·일 동맹을 강화하는데 중국의 시각에서는 미국의 표적이 아무래도 북한이 아닌 중국 같았다. 또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동아시아 미사일방어체계(MD) 구축을 위해 일본에 이어 한국의 참여를 종용하고 나아가 한·중·일 3국 동맹을 추구하는 것 같았다.
중국은 전략적으로 한국을 끌어당겨보았으나 한국은 사드를 배치했다. 압박을 했더니 반중 감정이 일어 한·미 동맹을 재평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미국은 놓치지 않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성사시켰다.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했다. 한국이 MD와 한·미·일 3국 동맹으로 기울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우려는 기우였다. 역사인식 문제로 한·일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으며 지금의 한·일관계로는 미국의 목표 달성이 요원해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에 대한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감소했다.
나날이 격화되는 미·중 간 전략적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한 한국이 주권과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종종 강대국의 눈치도 살펴야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후세에 ‘굴욕 외교’로 평가받지 않으려면 한국 스스로 전략적 가치를 높이고 국력을 증진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누구도 덩의 대일외교를 굴욕이라 표현하지 않는 이유다.
한국이 스스로 전략적 가치를 높이는 첫 단추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다. 아베 전 총리와 유사한 스가 총리의 최근 한국 현안 관련 발언으로 본다면 한·일관계에 당분간 변화가 나타나기는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한·일 전문가들이 상호 이익을 위해 양국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계속 강조하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이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한·일관계의 개선을 요구한다면, 후일 아베의 ‘승계’를 넘어 자신의 정치력을 높인 스가 총리가 한국정책에서 어떠한 변화를 보일지 아직 알 수 없다. 한국은 대일 외교에서 투트랙의 원칙을 견지하고, 일본 내 전문가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미국의 지지를 얻는 장기적인 노력을 일관되게 유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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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9180300085&code=990100#csidx895bd521e7bcd038269b199ec2f25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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