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칼럼]음모론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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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0-09-30 06:05 조회 3,826 댓글 0본문
지금 유럽은 코로나19와의 힘겨운 전쟁 중에 이에 못지않은, 또 다른 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바로 음모론과의 싸움이다. 유럽연합은 웹사이트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한 가짜 정보와의 싸움이라는 페이지를 설정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사실과 거짓을 어떻게 구별하며 온라인 매체에 떠다니는 각종 음모설에 대처하는 방법에 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은 반드시 그 배후의 비밀스러운 힘으로 조직된다고 믿는 음모론은 우선 세계를 선과 악의 세계로 가려서 본다. 이어서 어떤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악의 화신으로 지목하고 이를 집중 공격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세계 지배를 꿈꾸는 중국이 우한에 있는 한 실험실에서 의도적으로 배양해 세계에 퍼뜨렸다거나 빌 게이츠가 자신이 개발한 코로나 백신을 통해 전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는 게 지금 나도는 대표적 음모설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각종 음모론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사회가 혼란에 휩싸여 미래에 대한 전망이 흐릴 때 지속성을 띠거나 아니면 나타났다가 곧 사라지는 음모론이 난무한다. 케네디 암살과 9·11 테러는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관여했다거나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실제로는 없었고 조작되었다는 음모론은 아직도 심심찮게 나돈다. 이집트 출신 남성과의 관계로 인해 생길 영국 왕실의 명예 실추를 막기 위해 영국 비밀정보부(MI6)가 파리에서 그와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함께 탄 차에 교통사고를 일으켰다는 반이슬람적인 음모론도 입방아거리로 등장한다.
우리 현대사에도 음모론적인 시각으로 거론된 사건들이 있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북한군이 개입되었다거나 불순한 세력에 의한 무장봉기였다는 내용의 음모론이 그렇다. 이 같은 음모론을 펼친 대표적인 극우인사 지만원은 5·18의 가치를 악의적으로 폄훼했다는 이유로 실형 선고를 받았지만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고 들린다.
이런저런 음모론의 기저에는 어떤 사건에도 우연은 개입할 수 없고 따라서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사건이나 상황을 빈틈없이 조직하는 어떤 비밀스러운 힘이 있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음모론은 신정론(神正論)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전지전능한 신이 악을 이 세상에 남겨둔 것은 바로 이 악을 통해 인간이 선한 세계를 추구하게끔 한다고 주장하는 신정론과는 달리, 음모론은 신 대신에 세계를 지배하려는 권력 엘리트의 세속적인 힘을 전제한다.
그러면 음모론을 제기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에겐 특별한 표징이 있는가. 일반적으로 음모론은 정치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 주변부로 내몰린 사람들이 선악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는 새로운 구세적(救世的) 질서를 동경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을 각각 선과 악의 화신으로 설정하고 “우리는 중국에서 오는 모든 것을 거의 제거했다”고까지 공언하는 트럼프처럼 지구상에서 가장 막강하다는 정치인도 음모론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인간의 본성엔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긍정적 피드백’ 요소가 있지만, 지나치면 자기중심적인 편집증(偏執症)으로 발전해 쉽게 음모론의 포로가 된다.
음모론은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가짜뉴스와 대중을 선동하는 포퓰리즘과 한 조(組)가 되어 정치의 많은 내용을 채우고 있다. 특히 크고 작은 음모론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전파되다 보니 책임의 정치보다는 비난과 핑계의 정치에 날개를 달아준다.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모든 방법을 동원해 상대방을 음모 집단으로 비방하거나 아니면 상대방의 음모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변명으로 정치의 내용을 채운다.
편집증 환자나 선동적인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음모론에 어느 정도 동조하고 있다는 점을 <장미의 이름>의 작가 움베르토 에코는 지적한 적이 있다. “인간은 자신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싶어 한다. 일리아스에서도 트로야의 운명은 신의 음모로 서술되었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정체되면 책임은 본인들에게 있지만 먼저 정부를 욕한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음모론을 찾는다.”
이 같은 지적은 물론 옳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음모론이 근거 없는 억지 주장만은 아니다. 처음엔 음모론으로 치부되던 내용이 뒤에 사실로 밝혀진 사례도 적지 않다. 1950년대 초반부터 10년 가까이 미국에서 CIA가 생체 실험을 통해 인간 정신을 조종할 수 있는 ‘초능력자’를 극비에 양성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나돌았다. 너무 황당하게 들려 사람들은 쉽게 믿지 않았지만 1974년 12월 뉴욕타임스가 관련 문서를 공개하면서 사실로 드러났다.
이같이 실제로 있었던 냉전기의 음모론적인 환경은 유럽연합이 음모론을 경고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과는 상당히 다르다. 얼마 전 홍콩의 한 교수가 음모설을 뒷받침하는 맥락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한의 연구소에서 배양됐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가짜뉴스’라는 이유로 그녀의 계정을 일단 정지시켰다. 중국의 압력 때문이라는 의혹도 제기되었지만 학계에서 우선 논문의 내용을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음모론은 공론의 장을 피한다. 그렇다면 ‘코로나 거짓말’이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시위하는 음모론자와의 대화는 아예 불가능한가. 이들과의 대화에는 마치 항원을 인체에 주입해서 항체를 만드는 백신처럼 감정이입이 먼저다. 위에서 언급된 유럽연합의 웹사이트도 음모론자를 대하는 수칙에서 이들을 비웃거나 너희들 주장이 틀렸으니 포기하도록 강요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되레 강하게 반발하고 이전보다 더 음모론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9290300055&code=990100#csidxdcec5af8c39ad0ca30b778cb970fe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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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건이나 상황은 반드시 그 배후의 비밀스러운 힘으로 조직된다고 믿는 음모론은 우선 세계를 선과 악의 세계로 가려서 본다. 이어서 어떤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악의 화신으로 지목하고 이를 집중 공격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세계 지배를 꿈꾸는 중국이 우한에 있는 한 실험실에서 의도적으로 배양해 세계에 퍼뜨렸다거나 빌 게이츠가 자신이 개발한 코로나 백신을 통해 전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는 게 지금 나도는 대표적 음모설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각종 음모론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사회가 혼란에 휩싸여 미래에 대한 전망이 흐릴 때 지속성을 띠거나 아니면 나타났다가 곧 사라지는 음모론이 난무한다. 케네디 암살과 9·11 테러는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관여했다거나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실제로는 없었고 조작되었다는 음모론은 아직도 심심찮게 나돈다. 이집트 출신 남성과의 관계로 인해 생길 영국 왕실의 명예 실추를 막기 위해 영국 비밀정보부(MI6)가 파리에서 그와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함께 탄 차에 교통사고를 일으켰다는 반이슬람적인 음모론도 입방아거리로 등장한다.
우리 현대사에도 음모론적인 시각으로 거론된 사건들이 있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북한군이 개입되었다거나 불순한 세력에 의한 무장봉기였다는 내용의 음모론이 그렇다. 이 같은 음모론을 펼친 대표적인 극우인사 지만원은 5·18의 가치를 악의적으로 폄훼했다는 이유로 실형 선고를 받았지만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고 들린다.
이런저런 음모론의 기저에는 어떤 사건에도 우연은 개입할 수 없고 따라서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사건이나 상황을 빈틈없이 조직하는 어떤 비밀스러운 힘이 있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음모론은 신정론(神正論)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전지전능한 신이 악을 이 세상에 남겨둔 것은 바로 이 악을 통해 인간이 선한 세계를 추구하게끔 한다고 주장하는 신정론과는 달리, 음모론은 신 대신에 세계를 지배하려는 권력 엘리트의 세속적인 힘을 전제한다.
그러면 음모론을 제기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에겐 특별한 표징이 있는가. 일반적으로 음모론은 정치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 주변부로 내몰린 사람들이 선악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는 새로운 구세적(救世的) 질서를 동경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을 각각 선과 악의 화신으로 설정하고 “우리는 중국에서 오는 모든 것을 거의 제거했다”고까지 공언하는 트럼프처럼 지구상에서 가장 막강하다는 정치인도 음모론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인간의 본성엔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긍정적 피드백’ 요소가 있지만, 지나치면 자기중심적인 편집증(偏執症)으로 발전해 쉽게 음모론의 포로가 된다.
음모론은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가짜뉴스와 대중을 선동하는 포퓰리즘과 한 조(組)가 되어 정치의 많은 내용을 채우고 있다. 특히 크고 작은 음모론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전파되다 보니 책임의 정치보다는 비난과 핑계의 정치에 날개를 달아준다.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모든 방법을 동원해 상대방을 음모 집단으로 비방하거나 아니면 상대방의 음모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변명으로 정치의 내용을 채운다.
편집증 환자나 선동적인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음모론에 어느 정도 동조하고 있다는 점을 <장미의 이름>의 작가 움베르토 에코는 지적한 적이 있다. “인간은 자신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싶어 한다. 일리아스에서도 트로야의 운명은 신의 음모로 서술되었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정체되면 책임은 본인들에게 있지만 먼저 정부를 욕한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음모론을 찾는다.”
이 같은 지적은 물론 옳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음모론이 근거 없는 억지 주장만은 아니다. 처음엔 음모론으로 치부되던 내용이 뒤에 사실로 밝혀진 사례도 적지 않다. 1950년대 초반부터 10년 가까이 미국에서 CIA가 생체 실험을 통해 인간 정신을 조종할 수 있는 ‘초능력자’를 극비에 양성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나돌았다. 너무 황당하게 들려 사람들은 쉽게 믿지 않았지만 1974년 12월 뉴욕타임스가 관련 문서를 공개하면서 사실로 드러났다.
이같이 실제로 있었던 냉전기의 음모론적인 환경은 유럽연합이 음모론을 경고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과는 상당히 다르다. 얼마 전 홍콩의 한 교수가 음모설을 뒷받침하는 맥락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한의 연구소에서 배양됐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가짜뉴스’라는 이유로 그녀의 계정을 일단 정지시켰다. 중국의 압력 때문이라는 의혹도 제기되었지만 학계에서 우선 논문의 내용을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음모론은 공론의 장을 피한다. 그렇다면 ‘코로나 거짓말’이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시위하는 음모론자와의 대화는 아예 불가능한가. 이들과의 대화에는 마치 항원을 인체에 주입해서 항체를 만드는 백신처럼 감정이입이 먼저다. 위에서 언급된 유럽연합의 웹사이트도 음모론자를 대하는 수칙에서 이들을 비웃거나 너희들 주장이 틀렸으니 포기하도록 강요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되레 강하게 반발하고 이전보다 더 음모론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9290300055&code=990100#csidxdcec5af8c39ad0ca30b778cb970fe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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