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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그들만의 아름다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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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7회 작성일 19-11-1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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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벨 에포크(Belle Epoque)’를 단순 번역하면 ‘아름다운 시절’이란 뜻이지만, 이 단어에는 그 이상의 함의가 있다. 프랑스혁명에서 나폴레옹 제정, 보불전쟁에 이르기까지 유럽은 전쟁의 불꽃이 그치지 않는 격동의 시대였다. 거듭된 혼란 끝에 프랑스 국민들은 국민 선거에서 75%의 지지로 나폴레옹 3세를 대통령에 선출했다. 나폴레옹 3세는 영광스러운 프랑스의 재건, 특히 파리의 도시재개발을 추진했다. 시위대가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기 좋았던 좁은 골목과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이 철거되고, 새로운 대로와 공공건물들이 세워졌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파리는 이 시절에 만들어졌고, 새로운 파리는 전 유럽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는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세상읽기]그들만의 아름다운 시절
카를 마르크스는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던 이 과정을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笑劇)으로 끝난다”라고 말했지만, 나폴레옹 3세가 보불전쟁(1871)에서 패배하여 퇴위한 이후부터 제1차 세계대전(1919)이 일어나기까지 거의 반세기에 이르는 기간은 유럽인에게 ‘벨 에포크’였다. 이 시기, 영국은 빅토리아 시대,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맞이하고 있었다. 1878년 서구 열강은 지구 면적 중 67%를 식민지나 통치령으로 삼았고, 1914년 무렵엔 그 면적이 더욱 넓어져 85%에 이르렀다.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 60주년을 맞이한 1897년 영국은 전 세계 면적의 5분의 1,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지배했다.

제국의 영토에는 해가 지지 않았지만, 그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비유럽인들,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은 암흑의 시대를 살아가야만 했다. 서구식 문명화를 명분으로 앞세운 열강의 제국주의와 가혹한 식민 정책 아래에서 세계가 수탈당했다. 그토록 넓은 지역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자유를 빼앗긴 채, 권리도 없이 노예에 버금가는 삶을 살았음에도 오늘날까지 많은 유럽인들 또는 그 시절 부역하며 기득권을 누렸던 비유럽인들 중 일부는 그 시대를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한다. 역사적으로는 가장 어두운 시대를 살았던 노인들 역시 자신의 젊음이 가장 빛났던 시기를 그 같은 시절로 기억하곤 한다.

실제로 나치 정권 치하를 살아낸 독일 노인들 가운데 “당시에는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우지 않고 문 앞에 세워둘 수 있었다”는 것과 “장발과 싸움패는 제국노동봉사단에 끌려갔다”는 사실을 제3제국의 업적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있고, 무솔리니가 통치하던 파시즘 치하를 “기차가 정시에 도착했던 시대”로 회고하는 이들이 있다. 이제 와서 ‘삼청교육대가 어인 말이냐’라고 할 사람도 있을 테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조직폭력배 사건이나 기타 등등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을 향해 ‘삼청교육대에 보내야 한다’고 목청 높이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아마도 박찬주 전 육군대장에게도 ‘삼청교육대’로 상징되는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박찬주가 기억하는 좋았던 시절이란 장군의 부인이 아들에게 부침개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민의 자식인 공관병 얼굴에 부침개를 던지고, 키우던 화초가 냉해를 입자 공관병을 발코니에 1시간씩 가둬두어도 괜찮았던 시절을 의미한다. 그래도 아무 문제 없었던, 누구도 찍소리할 수 없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는 군인권운동가를 ‘삼청교육대에 보내야 한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가 기억하는 아름다운 시절이란 군부가 영장이나 재판은 물론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무고한 시민 6만755명을 잡아들여 이 중 순화교육 대상자로 분류된 3만9742명을 군부대 내에서 정화한답시고 강제 노역과 훈련, 폭력과 구타로 모두 54명이 숨지는 국가폭력이 자행되어도 아무렇지 않았던 시대다. 이 시절을 어떤 이는 여전히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할 것이고, 어떤 이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 하겠지만, 우리는 그날의 학살자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여전히 골프장을 들락거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들만의 좋았던 시절은 민주공화국의 태양 아래 계속되고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1112042005&code=990100#csidxb8940580629ddd0afb045d30c9c4bf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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