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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108회 작성일 19-05-31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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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국과 독일의 끝없는 "전쟁"

  영국이 월드컵에서 독일에 패했을 때 영국은 온통 슬픔과  수치감에 싸인 적막에 빠져 들었다. 다른 나라가 아닌 독일에 많은 스코어 차이로 패했다는 것이 영국인에게는 각별한 치욕감의 원인이었다. 2차 대전이 끝난 지 65년, 이제 많은 인접국민의 독일에 대한 분노감은 사라져 가고 있다.
  단지 영국인과의 관계만이 독특하다. 아직도 기회있을 때마다 영국과의 언론을 통한 설전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싸움은 완전 일방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설전이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모욕적이며 원색적인 언어로 비방전을 벌이는 것이다. 이번에는 독일 축구황제 베켄바워의 말을 인용했는데 완전 오역으로 (dummerweise, 즉 ‘바보스럽게’를 ‘바보’로) 꼬투리를 잡았으니 대단히 무책임한 언론이다. 여기에 앞장서는 언론은 Sun, Daily Mirror 같은 대중지.
  일방적이라고 하는 것은 독일 언론의 무반응, 무관심 때문이다. 마치 먼 나라의 상황을 전하듯이 영국 일간지의 모욕적인 보도 내용만 전달할 뿐 전혀 흥분 하지 않는 냉철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반 시민들도 이런 이웃 국민의 반응에 대해 흥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놀랍게 느껴진다. 무언의 항의 아니면 답변의 여지가 없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이렇다 보니 유럽에서도 예외적인 이 두 나라 국민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조차 관심대상이 되고 있는 지경에 달했다. 런던 킹스턴 대학의 Beck 교수는 악화되어 있는 양국 간 문제의 주 요인으로 영국에 대항하는 정책을 펼친 빌헬름 2세 황제의 영향과 1,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전후 영국, 독일간의 축구경기의 영향을 꼽았다.
  2차 대전 상황을 보아도 전쟁을 피해 항복한 프랑스와 달리 영국과는 폭격전의 연속이었다. 양쪽 일반 시민들에게는 뼈에 사무치는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The Blitz(천둥 : 기습전)’이라고 불렀다. 독일공군의 원래 목표지역은 런던 시가지가 아니었으나 오폭으로 민가에 폭탄이 투하된 것을 게기로 양측 공군간의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투였다. 그러면서 민간인에 대한 폭격은 계속되었다. 1940년 9월 이후 9개월 사이에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인한  희생자는 6만 6천명을 넘어서는 정도였다.
  영국공군(RAF)은 베를린 시에 대한 폭격으로 대응하면서  쌍방은 시민살상을 목표로 하는 도시공격에 집중했다. 군사목표뿐 아니라 민간인 거주 지역을 목표로 한 잔인한 전쟁이었다. 이 작전은 1944년 여름에야 마감되었다.
  독일이 세계 최초의 로켓 V1을 개발하여 1944년 여름부터 1년 간 발사한 1만개 로켓 중 2400개가 런던 시내에서 2만 1000명의 사상자를 냈다. 1943년에는 V2호가 생산되기 시작, 이로 인해 7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1945월 2월 전쟁 종말 직전 드레스덴 시에 대한 영국공군의 폭격은 대표적이다. 단 하루에 2만 3천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폭격이었다. 독일지역에서는 지금의 동독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소도시까지도 폐허화 된 것이 주로 영국공군에 의한 것이었다.
  전선이 아닌 후방에서 온 국민이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피점령 지역이 아니면서도 가장 큰 전쟁의 쓰라림과 굴욕감을 안겨준 것이 65년이 지난 후에도 격한 반응을 일으키는지도 모른다.  [유럽리포트*2007]

  2. 중세 유대인 학살

  25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반 유대인 감정은 중세에  와서 유럽에 굳어졌다. 15세기 말 스페인에서 반 유대인 감정이 폭발되었지만 마르틴 루터는 유대인에 대한 개종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유대인 추방과 종교행위 금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13세기와 14세기에 전체 유대인이 학살된 적이 있고 14세기 중반 페스트가 범람했을 때도  유대인 전원이 학살되었다. 유대인이 우물에 독약을 뿌렸다는 소문이 이유였다.
  그 후 다시 불어난 유대인들은 15세기부터는 겟토에 주거지를 택해야 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에는 ‘유대인 골목 (Judengasse)’이 형성되었다. 1806년부터는 유대교도 다른 종교와 동등하게 인정되어 1930년경에는 거의 3만 명이  거주하는 유대인 중심도시가 되었다.  [유럽리포트*2006]

  3. 사치성의 뿌리는?

  시카고대학 경제학 교수들이 백인과 흑인 사이의 생활수준 격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다. 흑인들이 백인보다 수입이 낮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것이었지만 흑인들이 같은 수준의 수입을 가진 백인보다 더 큰 자가용을 타고  호화스러운 다이아 반지를 사는 등 겉으로 나타나는 사치에 큰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경제학자들은 두 가지 질문에 관심을 돌렸다. 흑인이  정말로 백인보다 더 많은 돈을 지출하는가? 그렇다면 왜 그런가 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타 대학 그룹을 합류시켜 소수민족의 소비성향을  분석했다. 사치성향에 대한 경제학자의 이론은 이미 1899년  노르웨이 경제학자 Veblen에 의해 발표된 것이 있었다. 그는 갑부들을 중심으로 이들의 소비성향을 연구했는데 갑부들이  자기의 부를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출을 한다며 이 현상을‘과시성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고 칭했다. 시카고 학자들은 ‘이 현상이 갑부들에게만 볼 수 있는 성향인가?’ 라는 질문에 관심을 두고 연구대상을 서민층으로 확대했으며,  남의 눈에 잘 띄는 물품, 즉 승용차, 보석, 의상에 대한 소비성향 조사에 초점을 두었다.
  이들은 흑인이나 히스패닉 계는 동일한 재산과 수입 정도의 백인에 비해 과시성 소비품에 무려 30% 이상을 더 많이 지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한 소비성향은 사회적 지위에 따라 영향을 받는데 흥미롭게도 주 구역과도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즉 사회적 지위가 비슷한 그룹이 집단적으로 거주할 때 자기 부를 과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며 이는 과시성 소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소비자의 수입 수준에 따라 ‘과시성 소비’ 가 증가하지만 이 비중은 부자일수록 감소한다는 사실 역시 흥미롭다.  연간 수입이 1만 달러가 증가할수록 부자들의 과시성 소비는13% 감소한다. 또한 과시성 소비는 젊은 층일수록 높아진다는 사실과 교육수준에 따른 차이점도 발견되었다. 즉 대학교육을 받은 계층보다 고졸 출신이 소비성향이 더 두드러졌다. 이  사실은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저개발국 시민들의 서구 사치품에 대한 선호도를 설명해 주는 대목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와 같은 결과는 미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결과를 한인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을  가져본다. 그런데 최근 한인사회의 한 가지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시용 고급 승용차를 구입한 인사가 있었다. 그런데 이를 계기로 그는 주변 지인과의 관계를 완전히 재정리했다는 것이다. 하나의 부작용이다.
  알고 지내던 지인과도 인연을 끊는 등, 마치 돈을 모든 것의 척도로 보는 천박성을 과시하려는 듯이 부로 인해 유발되는 또 하나의 부작용이다.  [유럽리포트*2008]

  4. EU 관료주의 모습

  2009년의 유럽연합은 마치 정부 위에 군림하는 또 하나  정부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의 역할을 줄여야 한다며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려는 판국에 EU Kommission은 스스로 규제를 창조해가며 전형적인 관료주의 행태를 과시하고  있다.
  이번에 알려진 건은 와인 병에 관한 것이다. 독일 바이에른 지역에는 독특한 모양의 와인 병이 있다. 납작하면서 둥근  모양을 한 진한 색 병이다. 여기에는 ‘복스보이텔(Bocksbeutel)’이라는 고유명사가 붙어 있다. 이미 1728년 뷔르츠부르그 시의회에서 최고 질의 와인만 이런 모양의  병을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을 포고했다. 그리고 1989년에는 EU가 이 병 모양을 고유상표로 인정했다. 독일 외에는 포르투갈에만 이와 유사한 와인 병이 허용되어 있다.
  이러한 규정은 ‘샴펜’이라는 고유명사 사용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는 경우와 유사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약 1년 전 독일의 과일주 생산업체가 상표에 ‘샴펜’ 종류라는 애매한 기록을 했다가 프랑스 샴펜 협회의 고소로‘샴펜’사용이 금지된 적이 있다.  프랑스의 Champagne 지역의 생산품에만 ‘샴펜’ 이라는 상표가 허용되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샴펜’ 이 아니라 ‘섹트(Sekt)’ 라는 독일단어를 사용한다.
  어쨌든 이 병 모양은 이 지역 자랑거리인 와인을 상징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상당히 지역감정을 내포하는 예민한 사항이다.
  그런데 EU 위원회가 내부 규정으로 이 병 모양에 대한 전유권한을 폐기시키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어 독일이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특허와 달리 이 규정은 내부 의결만으로 쉽게 변경될 수 있다. 최종 결정은 연말에 있을 것이라 한다.
  2014년 겨울에는 또 하나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올 예정이었다. 유럽 내 술집에서 이용하는 모든 용기는 내부에 눈금이 있어야 하며 이 눈금은 용기의 밖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용기는 투명한 유리그릇이어야 한다. 그런데 프랑크푸르트 근방에서는 사과 전통와인을 마시는데 이 와인은 원래 도자기로 된 독특한 ‘벰벨’ 이라는 용기를 사용해서 따라주는 전통이 있다. 이 유럽연합의 규정을 폐기시키기 위해  정치권이 총동원되어 겨우 방지시킬 수 있었다.
  2009년, EU 관료들은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규정을 고안해 냈었다. 당시 EU의 ‘햇볕 규정’으로 조소거리가 되었던 이  내용인즉 여름에 건설노동자 웃통에 쪼이는 햇빛이 피부색에 따라 위험도가 틀리므로 고용주는 인종에 따라 적합한 윗도리를 피부에 알맞게 공급하라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가히 관료주의의 극치라 할 만 하다.
  최근 있었던 다른 예를 본다. 현재 알려진 7백만에 달하는 화학물질 가운데 우리가 직, 간접으로 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즉 실용성이 있는 물질은 약 10만에 달한다. 그 가운데 97%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그 무독성이 방증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EU에서 이 10만개 전체 물질에 대해 무해성을 증빙하는 서류를 제출하라는  결정을 내리려 했다. 만약 이 안이 실현됐으면 유럽의 화학공업계는 수십억 유로의 추가부담을 감당했어야 했다. 아무런 의미를 찾아볼 수 없는 탁상행정을 만족시키기 위함이다. 마지막 순간에 각국  수상들이 적극 개입해서 이를 겨우 방지할 수 있었다.
  국제기업들은 이런 저런 잡일을 위해 브뤼셀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 독일 화학공업협회를 보면 이들은 개별 기업과는 별개의 대표부를 두고 있는데 170명이라는 거대한 인원을  가진 조직체이다. 이 밖에도 각 국가에서 파견하는 주 정부  연락사무실, 주요 기업들의 대표부, 법률사무실, NGO 등의  집결지를 이룬 곳이 브뤼셀이다.
  관료주의도 문제지만 브뤼셀에 있는 EU 의회 주변에는 수 많은 검은 그림자들이 들락거리고 있는데 이들이 소위 로비  활동가들이다. 이들이 다니는 레스토랑이 별도로 있고 이들을 수록한 전화번호부가 별도로 있다. 그 수는 아무도 정확히  모르지만 대략 2만 명은 족히 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런 음지활동에 부정의 씨앗이 싹트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3년 전 대규모 비리사건이 발각된 적이 있지만 그 후 얼마나 개선됐는지 알 수도 없다.
  바로 이와 같이 국가 위에 군림하는 국가를 혐오하기 때문에 프랑스나 네덜란드 시민이 EU 헌법을 거부한 것이다. 정치나 외교 면에서 성공적으로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EU 통합과정의 이면에는 이런 추한 모습이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유럽리포트*2009]

  5. 교포 2세들은 왜 바보인가?

  요즘 한국사회에서는 ‘선진화’가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대통령 취임식 연설문을 보아도 선진화는 이제 국가발전의 최우선 목표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 아직 선진사회를 이루지 못했으므로 이 선진국 대열에 오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선진화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경제력을 숫자로 나타내듯이 이를 기준으로 삼아 가름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독일어의‘개발도상국(Entwicklungsland)’이란 용어는 수치상으로 나타내는 국가 경제력을 기준으로 한 분류 개념에 속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의미하는 ‘선진국’은 수치를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GDP가 몇 만 달러인가와는 무관하다. 돈의 액수로  환산한다면 무역 11번째 국가인 한국은 이미 선진국 대열에 올라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선진화’란 외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사회 특유의 개념인 것이다. 국내에서는 선진화를 갈망하면서도 선진화로 가기 위한 명확한 근본적 방안의 제시가 없다. 선진화 개념이 규정되어 있지 못한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마치 허공에 뜬 것과 같은 막연한 선진화 운동을  시작하려는 듯이 보이기조차 한다.
  요즘 해외교포들은 현지 언론을 통해 국내에서 들려오는 낯 뜨거운 장면을 대해왔다. 국회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보이고 있는 비상식적인 사례와 같은 수준의 양태가, 같은 동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도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국회 사태가 벌어진 얼마 후 국회의원 외유단이 독일을 다녀갔다. 그 자리에서 교포 한 사람이 국회 폭력 사건을 거론했다. ‘국회의 싸움판으로 외국에서 낯을 못 들겠다’며 말문을 꺼낸 것이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그 유명 국회의원의 답변은 너무나도 명료했다.‘우리가 선진국이 못 돼서 그런 것이므로 외국인에게 잘 이해시켜 달라’는 변명이었다. 싸움판과 선진화의 연관성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다.
  일상 정치의 세계를 보자.
  정치가란 정적과의 의견대립을 통해서만 존립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정치가뿐 만이 아니다. 인간사회에서 갈등이 없는 인간관계란 생각할 수가 없다. 다만 이 알력을 어떻게 지혜롭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긍정적인 사회발전을 위한 핵심요체인 것이다. 열등한 민족, 선진화되지 못한 민족이나 사회에서는 욕설과 고성, 폭력과 총칼이 문제해결을 위한 필수조건을 이룬다. 현재 우리 민족 간에 오가는 대화도 한 가지 본보기가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의 해소, 극복을 몸에 익힌다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교육의 핵심과제로 꼽힌다. 그리고 이 과제는  높은 지능을 요구하는 대학에서의 교과과목이 아니다. 이보다 더 원초적인 기본 인성교육에 속하는 것이다.
  독일 유치원 교육을 보자. 유치원 교육에서 자연을 관찰한다든가 하는 학습내용을 제외하고 가장 중요시되는 과제가 자립정신의 일깨움이며 또 아이들 간의 알력을 풀어나가는 자세, 마음가짐에 대한 훈련을 갖도록 하는데 두고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전체 아이들을 모아 놓고 토론도 시키고 대화를 통해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게 하며 공개석상에서 사과할 수 있는  아량을 배우도록 한다.
  어릴 때부터 가정과 사회에서 이런 의식을 갖도록 인성교육을 받아 온 사람과 남에게 기죽지 않고 큰 소리 치고 싸우는 것을 승자의 미덕으로 여기는 교육을 받아 온 사회를 대표하는 국회의원 간에는 품위를 보나 혹은 외부에 표출되는 행동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이러한 문제는 독일의 경우 2세대와 1세대 간의 관계 속에서도 나타난다. 독일에서 1세대들은 2세대들을 놓고 평할 때 이들을 전체적으로‘바보 같다’라는 식의 평을 자주 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은 지적인 의미에서의 바보가 아니다.  2세들이 생각하는 갈등해소의 방법이 우리의 상식과 그만큼  차별화 되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에 나오듯이 소리를 질러가며 머리채를 잡고 싸움질을 해야 ‘똑똑하고 능력 있다’ 고 보는 기이한 행태를 대할 때 2세들은 이런 세계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품고 있으므로 당연히 이들의 반응에 나타나는 행동 양태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포들의 시각에서 보는 선진화의 요체는 비단 이 문제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다. 단지 선진화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통사상과 타협하기 힘든 갈등도 겪어야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유럽리포트*2009]

  6. 민족주의 병폐

  EU 회원국들은 국경이 없는 같은 테두리 안에 속해 있지만 회원국 간에 갈등이 없는 것이 아니다. 현재 파장이 일고 있는 곳은 슬로바키아와 헝가리 간의 민족분쟁과 알력이다.
  슬로바키아에는 헝가리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이 헝가리와 합병을 추구하는 데서 발단되었다. 슬로바키아에는 ‘언어 법안’이 통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슬로바키아 지역에 거주하는 헝가리계 의사가 동족의 환자를 치료할 때 어떤 언어를 사용할지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헝가리인의 수에 달렸다. 이들 ‘외국인’의 수가 20%가 넘는 지역이면 헝가리어를 사용하는 것이 허용되지만 20% 미만인데 자기들 모국어를 사용하면 최소 100유로에서 5천유로까지 벌금을 내게 된다. 이러한 규정에  대해 헝가리 의회는 소수민족에 대한 박해이며 인권유린이라고 주장하는 데 레스토랑의 메뉴 판도 규정상 모국어로 쓰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정도이다.
  알력은 여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간에는 오래 전부터 국경분쟁이 일고 있다. 심지어 크로아티아의 EU 가입에 반기를 들겠다는 협박이 오가고 있다. ‘United States of Europe’을 꿈꾸고 있는 유럽에서 10년 전에 있었던 코소보 전쟁 역시 대표적인 민족 간 전쟁이었다. 어제까지의 이웃이 하루아침에 적이 되어버린 처참한  전쟁으로 1만 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NATO 군의 개입으로 겨우 진정되었다.
  동유럽에는 1,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인위적인 국경이 조성되었는데 모든 분쟁은 단순히 ‘이민족’ 이라는 사실로 인해 갈등과 증오가 솟아난 것이다. 민족이라는 개념 하에 이와 같이  역사상 수없이 많은 불행이 초래되었다. 그리고 권력자들은  ‘민족’이라는 미명하에 이를 정권 유지와 권력 팽창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동독의 경우를 보아도 민족이라는 개념은 정치 이데올로기라기보다 자기 생존과 권력 유지를 위해 필요에 따라  변천되는 모습을 보였다. 즉 동독 정권은 60년대까지만 해도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믿고 있었으며 따라서 체제 경쟁으로 서독을 제압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때 결과적으로 나타난 슬로건은 ‘2국가 1민족’ 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동독은 체제의 비효율성을 깨닫게 되면서 통일을 전제하는‘민족’의 의미를 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한 민족 두개 국가’체제를 서방국가에서 인정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권력자들이 흡수통일을 두려워한 탓이다.
  즉 같은 민족이므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논리는 그들의 정책에서 사라졌다. ‘민족’이란 단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므로 서독의 좌파는 통일을 눈앞에 둔  순간까지도 통일을 거부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민족주의(Nationalismus)가 내포하고 있는 부정적인 면의 근원은 바로 ‘자기 민족에 대한 사랑’ 이라는 대 명제에 두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타자를 더 사랑한다는  것은 제 3자와의 비교를 통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독일정부기관에서 외국인 이주자를 위해 발간되는 책자에는‘민족주의’ 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민족주의자는 지나친  민족의식을 품고 있는데 민족의식이란 타민족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지나친 민족주의나 자기 민족에 대한  사랑은 타민족과 비교하는 과정에서 기준이 형성된다. 따라서 민족주의자는 타민족을 경멸하며 인간적인 가치를 자기와 같은 민족에 속한 자에게만 부여하려고 한다. 자기 민족이 다른  민족에 비해 우수하다는 믿음을 저변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인종을 혐오하는 인종주의자도  역시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독일의 예를 볼 수 있다. 독일이 통일되기 직전 동독인이  내세운 데모의 구호는 ‘우리는 같은 민족(Wir sind ein Volk!)’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과다한 민족의식은 이들로 하여금 민족적 우월감을 갖게 하며 동시에 타민족에 대한 증오심으로 분출되었다. 이 결과 지금 동독지역의 신나치당인 NPD가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배경이 된 것이다.
  히틀러가 극단적인 민족주의자였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정부의 안내서에는 민족주의란 극좌파,  분리주의자, 이슬람 극단주의와 함께 민주주의 체제와 타협할 수없는 정치 성향으로 명시되어 있다. 독일은 민족주의자를  원치 않음을 명시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최근 미국 교포 2세 가수가 수년 전, 한국을  비하하는 글을 올렸다는 단순한 이유로 한국을 떠나야만 했던 사건이 있었다. 이는 외국교포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수긍하기 힘든 사건이다.
  정부 책자에는 민족주의의 특징 가운데‘나와 생각을 달리하는 자(Andersdenkende)’에 대한 관용성 부족으로 인해 증오와 폭력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되어 있다.  [유럽리포트*2010]

  7. ‘Mademoiselle’의 운명

  여권운동주의자가 가장 혐오 하는 단어가 여성의 결혼여부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개인적인 사생활 환경을 보호한다는 데  의미를 두는 것이다.
  영어에서 Miss와 Mrs.의 중간 위치인 Ms가 일상화되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부터였다. 그에 비하면 독일 여성의  권리 주장이 훨씬 앞장선 셈이다. 고지식하고 철저한 성격으로 더욱 완벽하게 처리해 나가 독일의 ‘Fraeulein(프로일라인)’ 은 이미 1972년에 공문서에서 삭제되었다.
  유독 프랑스에서만은 아직까지도 Mademoiselle(Mlle; Miss)이 변함없이 사랑을 받고 있다. 일반 직장이나 관청 등 사회 전반에서 사용되고 있는 Madame은 기혼여성, 이혼여성 혹은 미망인에 대한 칭호이다.
  여권주의자는 수십 년 전부터 ‘Mademoiselle 철폐운동’ 을 펴고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전통을 바꾼다는 것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근에 와서 다시 일부 정치계에서‘마담과 마드무와젤을 구분한다는 것은 사생활에 대한 침범’이라며 이를 문제시하고 나왔다. 미혼녀를 표기하려면 미혼남도 별도 호칭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며 이 정도가 남녀평등의 기본이 아니냐는 것이다.
  마드무와젤을 유지하려는 측에서는 이 단어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르네상스 이후부터 이 단어는 특히 높은 지위에 있는 부인을 칭하는 단어였다. 그 후에는 모든 귀족부인에게 마드무와젤이라 불렀다. 17세기 후기가 되어서야 기혼, 미혼을 구분하여 마담, 마드무와젤이 구분되었다.
  프랑스 혁명 시에는 칭호를 모두 없애고 남성, 여성을 ‘시민’이라고만 칭했다. Citoyens citoyennes였다. 그러나 혁명이나 여권주의 등 오랜 변화에도 현대에 이르기까지 마드무와젤을 몰아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역으로 자신이 마드무와젤 임을 강조하는 여성도  있었다. 나는 한 남성의 귀속물이 아님을 과시하는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의미가 있다.
  한 가지 상황을 복잡하게 하는 것은 이 단어의 용법이 상황에 따라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관공서의 마드무와젤은 연령과 무관하게 미혼녀 전반이지만 일상 시민사회에서는 나이 25~28정도의 여성에 제한한다. 또 마담은 기혼, 이혼 혹은  과부인 여성이다. 그러니까 ‘아직 젊게 보인다’ 고 자부하는  여성에게 마담이라고 했다면 이는 우리말에서 ‘아줌마’ 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프랑스혁명 전까지는 임금님의 형제나 삼촌의 딸은 마드무아젤이라는 호칭이 허용되었다. 또 귀족의 부인이면 결혼여부와 무관하게 Demoiselle이라 불렀다.
  이제 프랑스혁명이 200여 년이 지나도록 공공기관의 서류에는 남녀로 구별하는 게 아니라 남성, 기혼 여성, 그리고 마드무와젤로 갈라놓고 있는 것이다.
  40년 전 정계에서 이 용법이 불법이라는 주장이 있었으나 프랑스는 역시 전통의식이 더 강했다. 게다가 여성에 대한  예절의 문제였다.
  그런데 최근 여권운동가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변천된 것이 뉴욕 호텔에서 성추문으로 체포되었던 전 IMF 회장  칸의 사건이 터지면서이다.
  마드무와젤 폐지 주장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여성에 대해 이름으로만 부르는 습관이 번져가고 있고 고등학교 교재에서도 성의 정체성을 놓고 작은 문화전쟁이 벌어질 정도에 달했다.
  프랑스는 어떤 다른 나라보다도 모국어에 대해 강력한  사랑과 자부심을 품고 있는 민족이란 것이 변화가 느린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화가 한창이던 90년대 중반 프랑스 정부는 공공부문에서뿐 아니라 언론, 광고나 과학자들의 논문에서도 프랑스어  사용을 의무화한 적이 있었다.
  프랑스에서 언어에 관한 모든 사항은 300여 년 역사를 가진‘프랑스 아카데미’ 관할 하에 있다.
  그러나 이제 역사적인 변화가 닥치면서 매력적인 프랑스  단어 하나가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았다.  [유럽리포트*2011]

  8. 독어가 쉽다고 선전하는 프랑스 교육부장관

  프랑스 문부성은 최근 학생들에게 보내는 안내서를 통해 제2 외국어로 독일어를 선택할 것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 EU 지역에서 독일어 사용인구가 가장 많다는 것을 이유로 꼽았으며  높은 수준의 이웃나라 문화와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라는 것. 동시에 한두 가지 구체적 이유를 들어 독일어에 대한 공포감을 덜어주고 있다. 한 마디로 독일어가 배우기 쉬운 언어라는 것이다.
  첫째, 프랑스어와는 달리 쓰이는 그대로 발음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독어에도 숨은 악센트가 있다는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예외 없이 마지막 모음에 악센트가 오는 프랑스어에 비하면 독일어에서 악센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며 단어마다 불규칙적인  악센트의 위치를 익혀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이 위치가 틀리면 알아듣기도 힘들뿐 아니라 매우 서투른 독일어가 된다. 한 유학생의  고백에 따르면 Berlin이나 Universitaet의 발음을 독일인이 알아듣게 할 수 있기까지 상당한 고통이 있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조립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단어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복합어로 구성된 단어가 많다는 점은 확실히 독일어의 편리한 점이다. 예로‘집 입구’라고 할 때 영어나 프랑스어의 of나 de를 사용하지 않고 Haus와 Eingang을 합쳐 한 개의 새 단어를 구성한다.
  그런데 복합단어의 편리한 장점은 여기서 그친다. 반면에  복합단어와 유사한 수없이 많은 전철(Praefix)인 ab, an, auf, ver 등으로 인해 파생되는 섬세한 의미의 차이와 변화가 얼마나 괴로움을 주는가는 상상 이상이다.
  외국인이 곤욕을 치르는 또 하나의 골칫거리는 명사의    ‘성(Genus, Artikel)’이다. 모든 언어구조가 그렇듯이 논리적인 근거 없이 무질서하게 남성, 여성, 중성으로 구분되어 있는  번거로운 언어이다. 한 가지 위로를 받을 일이 있다면 서부 아프리카 지역에는 5개 이상 최고 20개까지의 ‘성’ 을 갖는 언어가 있다고 한다.
  전체 256개 언어 가운데‘성’이 불필요하거나 2개의 성을  가진 언어가 약 200개에 달하고, 나머지 3개(26개 언어) 이상 5개 혹은 그 이상의 성을 가진 미개 언어(?)는 50여 개 이다. 독일어는 불행히도 뒤쪽에 속하는 언어이다.
  또 한 가지 불편한 독어의 특징은 주어, 동사, 목적의 순위가 뒤바뀌는 도치법이다. 이 어법은 유럽에서도 특이하다. 이 결과는 한국인이 느끼는 현지어와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프랑스 거주자는 프랑스어에 매혹되어 있는 듯하다. 프랑스어 사용을 즐기며 자부심마저 갖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독어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는 독어권과는 반대의 모습이다. 독어에서는 경솔하게 말을 시작하다가 ‘성’ 을 모르는  명사가 불쑥 나타날까 두려운 나머지 미리부터 주눅이 드는  경우가 많다.
  독일정부의 한 장관도 명사의 ‘성’ 때문에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다. 북부 독일 출신인 그는 남부 도시 뮌헨에서 연설 도중, 지역에서 사용되는 명사 단어의 성을 두 번이나 틀리게 짚었고 비서가 옆에서 도와주어 수정할 수 있었다. 독어화된 영어단어의 경우에는 독일인도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마음  편히 살기 위해 스스로 자기의 문법오류에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실제적 해결책이 될지도  모른다.
  그 밖에도 복잡한 격변화를 의식하며 독어를 사용해야 하는 혼란스러움을 예로 들어 본다. (부정관사 ein 과 명사의 변화가 다양한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 ‘나는 독일인이다’
  –여성, 남성 : Ich bin eine Deutsche, bin ein Deutscher
∎ ‘독일인과 함께’
: mit einer Deutschen, mit einem Deutschen
∎ ‘독일인에게’
: an eine Deutsche, an einen Deutschen, an die Deutschen
∎ ‘독일인 때문에’
: wegen einer Deutschen, wegen eines Deutschen
[2008년]




  9. 이태리와 독일의 승부없는 문화논쟁

  지난 7월 EU총회에서는 큰 논쟁이 벌어졌다. 발단은 독일 사민당 출신 슐츠 의원이 이태리의 베르루스코니 수상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모욕적인 비난을 가한 데에 있었다. 공식적인 발언에서 이태리 수상의 행태에 대해 마피아 방식 운운했으니 도를 지나친 것이 사실이었다. 이태리인의 치부를 찌른 것이다. 이태리의 수상으로서, 게다가 유럽연합의회 의장에 취임한  첫 날에 이런 비난을 받은 베르루스코니도 이에 질세라 격렬한 반  응으로 맞섰다. 그는 슐츠의원에게 ‘지금 이태리에서 홀로코스트 필름을 제작 중인데 당신은 거기 가서 감시원 역이나 맡으면 알맞겠다.’며 반격을 가한 것이다. 그 후 양국 간에  벌어진 설전과 반응 양태에 대한 언론들의 보도는 여름 정계의 지루함(Sommerloch)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베르루스코니  수상은 그렇지 않아도 국내에서 정치와 개인 사업을 혼돈,  자기 사업을 위해서는 법개정까지도 서슴치 않을 정도로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인물로 알려진 인물이다.

  마피아와 나치

  이태리인이 마피아의 비유에 당혹감을 느끼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독일인들은 나치나 나치즘과 연계, 비유되는 데에 극심한 당혹감을 갖게 마련이다. 사실 이 정도에 달하면 더 이상 합리적인 대화는 이어질 수 없다. 고의적으로  대화를 단절하겠다는 의도나 다름이 없다.
  나치언급에 대한 독일 측의 반응 역시 격렬했다. 베르루스코니 수상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으나 그는 슈뢰더 수상에게 전화로 유감의 뜻을 표했을 뿐 적당히 사태를 수습하려고만 했다. 그러던 중 이번에는 이태리 관광부장관이 개입했다. 그는 이태리에 여행 오는 독일인을 통틀어 모욕하고 비난하는 글을 언론에 투고했는데,‘금발머리 독일인들은 극렬민족주의자로  이태리 해안을 시끄럽게 하며 항시 제일 잘났다고 행세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게다가 독일인들은 이태리로 여행 오기 전에 언론을 통해 마피아 살인사건이나 자동차 도난사건에 대해서만 정보를 구해보는 국민이라고 비꼬기까지 하였다.
  결론적으로 그는‘저속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유럽연합의원인 슐츠는 이태리 역사를 모르는 것 같다’고 격렬히 비난하였다. 이 글을 쓴 장관은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북부 이태리  정당 출신이다. 그런데 이 관광부장관은 자신이 절대로 반독감정에 사로잡힌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자기 주장에 한층 더 무게를 실었다. 그 증거로 그는 20여 년간 독일승용차를 타고 있고 자기 부인은 바로 독일출신이라는 사실을 덧붙였다.
  이 글에 대해 독일 측에서도 즉각 반격이 이어졌다. 이태리 외무부가 사과를 안 할 경우 슈뢰더 수상의 이태리 휴가계획을 취소하겠다는 노골적인 협박을 가했다. 결국 장관은 사표를  제출하고 슈뢰더 수상은 이태리 여행을 포기함으로서 닭싸움하듯 이어진 성명전은 끝났다. 마지막으로 두 나라 수상이 함께 베로나에서 오페라 관람을 했으니 해피엔드로 끝난 셈이다.
  이 싸움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두 나라 국민성의 차이를 엿보게 하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독일공군은 이태리  남부에서 3,300명에 달하는 비행사의 전술훈련을 받아 왔는데 이태리인과의 국민성 차이 때문에 도저히 더 이상 공조를 하지 못하겠다는 얘기가 터져 나왔다. 차라리 터키지역으로 훈련장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건물을 하나 개조하는 데에 10년이 소요되기도 하고 공군용 특수 장비를 주문하면 아무런 이유 없이 전혀 납품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등 여러 가지 불평불만을 털어놓았다.
  이것이 전형적인 ‘이태리식’ 적당주의이다. 독일인들은 2차대전시 이태리 군이 총을 제대로 쏘아보지도 않고 후퇴만 했던 것 역시 전형적인 국민성 탓이라고 말한다. 지난 59년 간 58개의 정부가 취임했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정치 역시 매우 혼란스럽지만 그런 와중에도 경제는 독자적으로 굴러가는 것을 보면 확실히 특별한 국민임에 틀림없다.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두 국민성

  두 나라 국민성의 차이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이태리인이 독일인을 보는 시각은 이미 로마시절부터 변화가 없었다. 2000년 전 로마 저술가 타키투스(그는 처음으로 ‘독일’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북쪽에서 온 독일인의  높은 도덕의식을 모범으로 삼으라’ 고 추천했다. 괴테도 이태리에는 ‘삶에 생동감은 있지만 성실성이나 규율과 질서가 없으며 권력자는 자기 몫만 챙긴다’ 고 기술했다.
  이번에 벌어진 논쟁도 결국은 너무나 극단적인 두 국민성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상이한 문화와 국민성 간의  접근과 융화가 얼마나 힘든 문제인가가 이번 사건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는 것이 독일 측의 논평이다.
  현재 독일에 취업하러 왔다가 계속 체류 중인 이태리인만도 61만 명에 달한다. 또 지금까지 수십 만 명의 이태리인이 취업목적으로 독일로 이주하고 매년 수십 만 명의 독일인들이 이태리를 방문하면서 이 두 국민은 서로를 ‘잘 안다’고 믿고 있지만 실상은 이와는 다른 것이다.
  독일인들에게 이태리인은 일하기 싫어하고, 정돈과 질서를 모르는 민족이라는 선입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북부 이태리  공업지대는 유럽에서도 가장 경제성장이 빠르고 생산성이 높은 지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이태리인의 습성이나 의식도 작은 문제에서 부터  차츰 변화가 일고 있으며 독일인들이 과거 이태리를 보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경고성 주의도 관심을 끈다. 예를 들면 여름 휴가철이라도 옷은 어느 정도 격식을 차려 입어야 하며, 원래 시끄럽기로 이름난 이태리인이지만 이제는 소음에 예민해져 해안가에서도 오후 1시에서 4시 사이에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체국이나 은행에서 줄을 서서 기다릴 때 질서를 무시하고 새치기를 하는 버릇은 없어졌다고 한다.
  이태리인이 독일인을 보는 시각 역시 특수하다. 2차 대전시 이태리인 2만 3천명이 독일군에 의해 희생된 것도 이태리인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역사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독일인은  처음에는 무기를 들고 그 후에는 DM을 지닌 여행객으로서  침범했다는 평이 그 단면을 나타낸다 하겠다.
  돈 때문에 그나마 어느 정도의 친절을 베푼다지만, 그간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선입관이 순식간에 되살아난 셈이다. 한 학자의 지적에 의하면 우리가 선입관이라고 보는 것이 선입관이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야기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독일인이 없는 이태리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밀접한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그런 가운데에서 이 두 국민은 작은 일에도 서로 흥분하고  싸움거리를 만들곤 했다. 사랑싸움과 같은 관계일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역시 ‘사랑’ 과 ‘존중’ 간의 갈등으로 정의되며 서로  부호를 달리한 명구가 여전히 유효하다.‘이태리인은 독일인을 존중하면서도 사랑하지는 않으며, 반대로 독일인은 이태리인을 사랑하면서도 존중은 못한다.’  [유럽리포트*2009]
  10. 슬픔의 장면이 의미하는 것

  북한인들의 통곡장면은 과거 독일 현지 언론에도 여러 차례 보도되어 왔다. 김일성, 김정일과 김대중, 김정일과 푸틴, 김정일, 이런 장면들이었다. 첫 번째 장례식 장면은 서방 언론이 보기에는 슬픔을 강하게 표출하기는 했지만 ‘평범한’ 통곡의 장면에 지나지 않았다. 자기 부모가 아닌 국가수상의 장례식에  그렇게 강도 높은 슬픔의 표현이 일반적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다음 김정일과 김대중, 김정일과 푸틴의 행렬에서 눈물을 흘리는 북한인의 값싼 눈물작전은 누구에게나 그 근원을 알아 낼 수 없는 진기한 장면임에  틀림없었다. 앞선 기사에서도 눈물작전과 관련해 이색적인 장면을 간단히 소개한 적이 있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양 김의 대담장면이 CNN에 잠시 소개되었을 때 이 자리에서 김정일은 이산가족상봉 시 흘리는 눈물에 대해 논평을 한 적이 있었다. 남북대표단이 합석한 자리에서 입을 연 것이었다. “서울 TV에 보니 실향민이 울더군. 그런데‘정말로’울더라고” 라며 김대중 이하 전체 합석자에게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뜻밖에도 ‘정말로 울고 있는’ 신기한 모습에  대해 한 마디 던진 것이다. 영문자막이 없어 한국인만이 알아 들을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 말의 저의에는 어떤 의미가 숨어 있을까? 혹시 그가 실언을 한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북한의 권력층은 TV에 보이는‘바닥인생(Fussvolk)’들의 울음은 연극의 한 장면 같은‘가식의 울음소리’임을 명백히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같은 결론은 또 다른 장면을 통해서도 확인될 수 있었다. 그것은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김일성 장례식 장면과 동독에 있는 북한대사관에서의 장례식 장면의 비교에서 나타났다. 북한에서는 알려진 대로 울음의 장송곡이 이어졌으며 몸부림치는 통곡의 바다였다. 그런데 북한대사관의 모습은 이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검은 색 양복으로 정장을 하고 곧은 자세로 조문객을 맞는 외교관들의 침착하고 조용한 모습은 평양 시내에서 오열하는 일반시민들과는 너무나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몸을 굽히며 비틀지도 않고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 엄숙한 장례식을 치르는 서구인과 조금도 다른 차이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를 보면 바닥인생은 몸부림을 쳐야 하고 고위층, 상류 엘리트사회에서는 몸부림이 허용되지 않거나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즉 감정의 발산형태를 보고 역으로 사회적 지위를 가늠할 수 있다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김정일 사망과 관련 독일 현지 언론의 판단과 보도는 과거와는 딴판으로 달라졌다는 것이  이 변이라면 이변이다. 첫 날 보도부터 북한에는 ‘석기시대식 공산주의(Steinzeitkommunismus)’라는 대명사가 붙었다. 또 대부분의 외국인 전문가들은 이 오열하는 모습에 대해 그 진정성을 의심했다. ‘통곡’ 이라기보다는 고통에 찌들고 무어라 규정짓기 힘든 신음소리라고 표현했다. 인터넷 댓글에는 ‘연극적 쇼(Schauspielerei)’ 혹은 ‘명령에 따라 터져 나오는 울음(befohlenes Heulen)’, ‘국가기관에  의한 대규모 조작’ 이란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여기에 걸맞게 기사 제목은 ‘북한의 집단 히스테리’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붙였다.  외국 언론들은 국내 언론에 비해 더욱 뚜렷하게 핵심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히스테리란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히스테리적 극적 표현력이 강한 여성이 출연하는 통곡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이제 울음은  슬픔과 기쁨을 표현하는 한계를 넘어 또 다른 목적을 위해 조작될 수 있는 새로운 장이 열려가고 있다. 
 
 11. 괄시 받는 독일인
  외국인이라면 돈을 벌려고 찾아 온 노동자로만 알고 있던  독일인이 역할을 바꿔 서러움을 받으며 돈을 좀 더 벌겠다고 살고 있는 곳이 지금의 스위스이다. 작은 차이가 있다면 스위스에는 고급인력이 많이 유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위스의 국수주의자(Schweizerische Volkspartei)도 여기에 맞춰 반 독일인 선동의 방향을 중산 엘리트 층에 돌리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독일인의 현지적응에 대해 광범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크로이츠링겐이라는 독일국경에 인접해  있는 인구 1만 9천명의 스위스 도시가 있다. 여기서 800명의 외국인을 대상으로 독일 콘스탄츠 대학 사회학과에서 조사한 결과였다.  특히 놀라운 것은 독일인은 10%만이 스위스사회에 동화되었다고 답변한 것이다. 37%는 이 도시에 살면서 차별화를 당했다고 답변했다. 다른 외국인의 경우에는 만족도가 뚜렷이 높았으며 3분의 1은 완전히 스위스에 귀속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타 외국인의 25% 역시 차별화를 당한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서 독일인은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 독일 이주자들은 쇼핑할 때나 TV 이용에서도 독일 측에 치중하며, 또 이들은 상당한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학술논문에서 내린 결론은 독일인은 스위스  체류기간이 5년 정도여서 25년 스위스에 거주하고 있는 타 외국인에 비해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그 원인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소위 연방정부의 특별 지원제도(Exzellenzinitiative)로 지원받은 이 논문의 일방적인 시각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스위스의 상황은 유사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사회현상이다. 오히려 사고의 방향을 스위스인의 의식과 국민성, 사회 환경의 특수성에서 논의되어야 하지 않을까 여겨지는 것이다. 독일인과 스위스인과의 특수한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충분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리포트*2009]




 12. 국적불명의 오스카 수상자
  크리스토프 발츠(Waltz)가 오스카 상을 수상하자 오스트리아는 환희의 도가니에 빠졌다. 오스트리아 인으로 1963년 마리아  셸(Schell)이 수상한 이후 처음 있는 경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창 경축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그가 독일국적 소지자라는 사실이 외부에 밝혀졌다. 그는 Wien에서 태어났으며 교육과정 초기 활동무대는 Wien이었었다.  오스트리아는 곧 그에게 국적신청을 하도록 종용하고 수상이 직접 그의 신청이 이루어지도록 관여하겠다는 다짐까지 주었다. 원래 오스트리아는 독일인에게는 국적을 주는 일이 없다. 러시아의 부패 기업인에게 줄 수는 있어도 이웃나라 독일인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후 더욱 난감한 사실이 알려졌다. 독일국적을  가진 이 수상자는 현재 런던에 살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    행 그린 카드 소지자라는 사실이다.
  소국근성을 드러내던 온 국민이 당황하고 있다.
[유럽리포트*2010]

  13. 이웃사촌간에 벌어진 해프닝

  독일인이 일자리를 찾아 스위스로 이민을 떠나기 시작한 것이 10여 년 전의 일이었다. 독일통일이 된지 5-6년이 지났을 때 동독지방과 서독지역의 실업률은 각기 20%와 11%를넘었었다.  바로 지난 10월 실업률 5.8%와 9.5%에 비하면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이때 독일인이 일자리를 찾아 택한 나라가 스위스였다. 더욱이 동독인들로서는 처음으로 자유스럽게 서방세계에서 돈을 벌어 본다는  흥분감이 컸다. 요식업, 호텔업, 건설업계에는 동독출신이 그리고 서독에서는 의사, 대학교수 등 고급인력이 스위스로 향했다.  독일과 스위스는 이웃 사촌간이다. 스위스는 독일인이 즐기는 휴가지로서 두 나라 국민은 자주 접촉을 갖고 있던 셈이다. 그러나 이 관계란 어디까지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인과 고객 간에 교감을 누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두 나라 국민이 같은 직장, 같은 국가 테두리 내에서 어울려 생활해야 했다. 일상생활에서 부닥치면서 갈등의 소지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우선 스위스인에게 독일 고급인력은 직장을 얻고 집을 구하는 데서 경쟁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요즘 독일경기가 회복되면서 상당수의 독일인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는 외국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단지 놀라운 것은 고향을 되찾는 독일인들이 스위스생활과 스위스인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품고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 어떤 민족 간에도 이런 전례는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생활조건이라든가 혹은 고향생각이 귀국의 동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증오심으로 이어지는  데는 어떤 배경이 작용한 것이다.  도대체 그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 스위스인은 독일인이 거만하다고 비난한다. 또한 독일인의 언어와 행동이 직선적인 것에 대해 스위스인은 불손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독일인들은 자신이 가장 예의 바르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스위스인이 보기에는 우선 일상적인 말투부터 즉 사용하는 단어선택이나 목소리부터 그리고 생활방식이 자신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독일인의 밀고 나가는 식의 경쟁방법 역시 스위스에서는 낯설다. 또 독일인은 큰 소리로 떠든다고 한다. 게다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만큼 너무 직설적이다. 또 어떤 문제이든 아는 척해야 속이 풀린다.  반대로 독일인이 스위스인을 평하는 시각 역시 작은 관습 즉 문화적 차이에서 나타나는 지극히 일상적인 행태에서 연유되는 사안이다. 스위스인은 항시 거리감을 두고 대하며 마음을 닫고 지낸다. 따라서 서로 가까워지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독일인들은 스위스인과 독일이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지만  스위스인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오히려 서로 역사와 문화가 다르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언어 역시 다르며 대인관계 역시 완연히 다르다  위에 소개한 스위스인의 특징적인 성격을 보면 이것이 바로 ‘본태적인 독일인 소유의 특성’ 이라고 생각된다. 단지 스위스인은 독일인보다 더욱 뿌리깊은 독일적인 의식을 지닌 국민이라는 것이다. 독일어에 ‘독일인보다 더 독일적’ 이라는(deutscher als die Deutschen) 어구는 바로 스위스인을 두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 독일인들은 이 원초적인 독일인의 특성을 참지 못한다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민족 간의 핵심적인 차이점이 있다면 스위스인은 그들의 언어가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 일상적인 생활용어라는 점이다. 여기서 표면화되는 것이 언어로 인해 얽혀있는 스위스인과 독일어의 관계다. 즉 스위스어는 스위스 고유의 언어로 보며 오히려 독일어를 ‘외국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유치원에서는 이 스위스 방언을 모국어로 배우며 독일어는 초등학교에서부터 학습하기 시작하는 외국어에 속한다.  그러면서도 스위스인은 독일어에 능숙하지 못하다는 데 대한 열등의식에 빠져 있다. 학술서적이나 문학작품은 외국어인  독일어로 집필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 원인으로 볼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 열등의식의 원인이 되는 독일인과의 관계는  분출구를 찾을 수 없는 딜레마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열등의식’ 은 다른 양태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스위스인은 외국에서 자기들끼리 대담을 하다가 타인이 접근하면  즉시 영어로 대화를 이어간다. 이 성격은 독일인에게는 약간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는데 즉 독일인들은 외국어 사용을 매우 즐기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자기 모국어를 고집하는 프랑스인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유럽리포트*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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