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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유신 철폐, 노동 해방…걸어온 삶이 시대의 염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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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회 작성일 21-02-16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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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월 긴급조치1호 위반 혐의로 언론인 장준하(오른쪽)과 재판받는 백기완.  경향신문 자료사진

‘재야의 거목’이 스러졌다. 민중예술·민족문화의 보고(寶庫)이자 평생을 반독재 민주화와 노동운동, 통일운동에 앞장서온 ‘거리의 투사’ 백기완 선생이 15일 오전 4시 타계했다. 향년 88세.

고 백 선생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9일 오전 7시이다. 장지는 모란공원이다.

백 선생은 2018년 4월, 심장병으로 9시간30분 동안 수술을 받았다. 폐렴 증상 등으로 이후 몇 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증세가 악화돼 지난해 12월 서울대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군사정권의 고문으로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고,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각종 집회 때마다 맨 앞자리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지켰을 만큼 강인한 정신력과 집념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끝내 노환의 벽을 넘지 못했다.

유족으로 부인 김정숙 여사와 딸 백원담(성공회대 교수)·미담(화가)·현담(출판사)씨와 아들 백일(울산과학대 교수)씨, 사위 이종회(사회운동가)·이대일(회사원)씨, 며느리 김재영씨(소설가)가 있다.

고(故) 백기완 선생은 평생을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통일운동에 앞장선 재야운동가다. 또한 뛰어난 시와 소설을 쓴 예술가이자 민속문화 및 순우리말의 보고(寶庫)였다. 사자갈기 머리와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며 수십만 청중을 단숨에 사로잡은 명연설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칭·타칭 ‘울보’라고 할 만큼 ‘약자’ 앞에서는 눈물이 많은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성격 때문에 말년에는 외로움도 많이 탄 것으로 전해진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백 선생은 노동·통일·민주화운동의 큰 어른이시자 민족 혼을 온몸으로 구현하신 분으로서 1980년대부터 일어난 민중문화운동의 사표(師表)였다”며 “나를 비롯해 임진택(창작판소리), 이애주(썽풀이 춤), 채희완(탈춤). 김민기(가수), 주재환(화가), 김정헌(화가), 김정환(시인), 황석영(소설) 등 민족예술 1세대들에게 큰 영감을 주셨다”고 말했다.

백 선생은 1933년 황해도 은율군 구월산 밑에서 태어났다. 4남2녀 중 넷째였다. 일제시대 때 독립군에게 군자금을 대다 일경에 발각되어 고문 끝에 옥사한 백태주 선생이 조부다. 탈옥한 백범 김구 선생을 집에 한동안 피신시키기도 했다. 조부 때부터의 인연이 이어져 백 선생은 1967년 서울 충무로에 백범사상연구소를 열기도 했다.

백 선생은 1946년 아버지의 손을 잡고 삼팔선을 넘었다. 어머니와 큰형, 누나는 북한에 남았다. 삼팔선을 사이에 둔 어머니가 그리워 선생은 매년 추석이 다가오면 백년설의 ‘어머니 사랑’을 부르곤 했다.

정규교육이라고는 일제시대 때 국민학교(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닌 게 전부였다. 하지만 독학으로 청계천 중고책방에서 영어사전을 통채로 외워 고등학생 영어과외를 시켰을 만큼 머리가 비상했다.

청년시절인 1954년부터 1960년까지 ‘자진녹화대’ ‘자진농촌계몽대’를 결성해 전쟁의 상흔을 끌어안고 참다운 민중의식을 세우기 위한 나무심기운동과 농민운동, 빈민운동을 했다. 재야운동가로서 민주화운동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은 1964년 ‘한일협정반대운동’이었다. 이후 “3선개헌 반대”, “유신 철폐”를 외치며 거리투쟁의 선봉에 섰다. 1974년 장준하 선생과 함께 ‘유신헌법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 운동’을 주도했다. 이 일로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1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75년 형 집행 정지로 석방됐다.

1979년에는 ‘YWCA 위장결혼사건’을 주도했다가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 끌려가 여러 달 동안 감금됐다. 살점이 떨어지고 손톱이 뽑히는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계엄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백 선생은 생전에 “당시 고문으로 10시간가량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후 ‘이렇게 죽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안간힘을 다해 쓴 시가 ‘묏비나리’”라고 밝힌 바 있다. 독방 감옥의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 누운 상태로 스스로를 달구질하기 위해 필기도구도 없이 입으로 지어 주문처럼 외우고 또 외워 내놓은, 총 15장으로 구성된 장시(長詩)다. 황석영 작가가 5·18항쟁 희생자를 추모하며 작사한 것으로 알려진 ‘임을 위한 행진곡’은 실제 백 선생의 ‘묏비나리’가 원작이다. 백 선생의 문학적 성취를 꼽을 때 유신의 압제가 절정이었던 1977년 발표한 수필집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를 빼놓을 수 없다. 딸(원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으로 쓴 이 책의 내용 중 특히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황해도에서 구전돼 온 ‘장산곶매’의 옛 이야기다. 날짐승 중 으뜸인 매, 그 중에서도 으뜸인 장산곶매가 대륙으로 떠나기 전날 밤새 부리질을 하여 자기 둥지를 부순다는 내용이다. 생사를 결단하고 싸움터에 나서는 전사, 의사, 열사의 전형상을 은유하는 설화다. 이후 장산곶매는 민중의 분노와 결단, 저항과 비상의 표상이 되었다.

▶관련기사 :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 원작...백기완 선생의 시 '묏비나리'

백 선생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열린 제 13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재야운동권의 독자 후보로 추대됐다. 김대중(DJ)·김영삼(YS) 두 후보가 야권 단일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민중의 힘으로 압박하는 게 목적이었다. 두루마기 차림으로 주먹을 불끈 쥔 채 청중 앞에서 포효하는 그의 모습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그만큼 청중을 단숨에 사로잡는 명연설가였다. 당시 대학로 대규모 유세 현장 등에는 대학생 등 10만명 이상의 청중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뤘다. “재야운동가 고 계훈제 선생(1921-1999)이 생전에 ‘몽양 여운형 선생보다 백기완이 더 연설을 잘 하는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라고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은 전했다. 하지만 DJ와 YS의 분열을 끝내 막지 못해 백 선생은 선거 이틀 전 피눈물을 머금고 후보를 사퇴했다. 이후 1992년 제14대 대선에도 ‘노동자민중후보’로 추대됐지만 현실정치의 벽을 넘지 못했다.


1987년 12월 5일 대학로에서 열린 백기완 대통령 후보의 선거 유세. 10만 청중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뤘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87년 12월 5일 대학로에서 열린 백기완 대통령 후보의 선거 유세. 10만 청중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뤘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러나 말년까지 그는 노동자, 농민, 철거민 등 ‘이름없는 약자’를 위한 집회나 비리 정권에 맞서는 현장이라면 제일 먼저 달려가 맨 앞줄을 지켰다. 박종철(1987·고문치사)·강경대(1991·백골단에 의해 사망)·박창수(1991·의문사)·백남기(2015·경찰의 물대포에 의해 사망) 열사 등 정권의 압제에 의해 아까운 생명들이 수없이 스러질 때마다, 또 용산참사(2009)와 세월호 참사(2014) 때에도 선봉에 서서 목이 터져라 싸웠다. 2011년 해고노동자 김진숙씨가 부산 부둣가 한진중공업 크레인 꼭대기에 올라가 300일 동안 고공농성을 하며 사투를 벌일 때에는 ‘일어나자, 일어나 이 밤을 뚫자’라는 피끓는 벽시를 띄우기도 했다. 송경동 시인은 “이후에도 쌍용차, 유성기업, 밀양송전탑건설반대, 현대차비정규직 등을 돕기 위해 출발한 ‘희망버스’라는 이름의 연대동참이 꼬리를 이었다. 1호차 차장은 늘 백 선생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 때는 단 한번도 빠진 적 없이 광화문 광장을 지켰다. 행여 소변이 마려워 자신이 현장을 흐트러뜨리는 상황이 올까봐 전날이면 아예 물을 안 마셨을 정도다. 백 선생은 “그래도 참지 못해 앉은 자리에서 옷을 적신 적이 있었다”며 “온몸이 촛불이 돼 현장의 제일선에 서겠다”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눈물이 많았다. 생전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언론인 겸 정치인 장준하 선생이 1975년 의문사를 당하자 한 달을 계속 울었고, 목숨을 걸고 처절하게 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보면서도 숱하게 눈물을 쏟았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고 문익환 목사와 더불어 재야의 동지였던 계훈제 선생의 기일이면 백 선생은 매년 경기 마석의 묘소를 찾아 막걸리 한 잔을 올리면서, ‘형님, 미안합니다. 좋은 세상 만들어 형님께 보여드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내 죄가 많습니다’라고 말하며 꺼이꺼이 울었다. 굉장히 인간적인 그런 모습이 내게는 더 인상적이었다”고 회상했다.

불쌈꾼(혁명가), 동아리(서클), 새내기(신입생), 새뜸(새소식), 달동네 등 백 선생의 잊혀진 순우리말 사랑과 보급은 쉼 없었다. 그러나 생전 그렇게 바라던 남과 북의 통일을 끝내 보지 못했다. 자본주의를 넘어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되, 모두가 올바로 잘 사는 세상을 뜻하는 ‘노나메기’ 세상도 끝내 보지 못했다. 백 선생이 우리 사회에 남겨둔 숙제다.

▶관련기사 : 백기완 마지막 책에 담긴 '노나메기'란..."너도 나도 올바로 잘 사는 세상"

그는 2018년 4월27일 남북정상회담 때 판문점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분단선을 서로 넘어서는 장면을 당시 입원해 있던 서울대병원 병상에서 지켜보며 눈물을 흘렸다. 당시 선생은 “남북한 최고 지도자가 서로 웃으며 악수한 것은 한민족이 택한 평화와 통일의 아우성을 깃발처럼 날린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앞서 그해 4월9일 백 선생은 심혈관 질환으로 입원해 12시간에 걸친 긴 수술을 받았다. 이후 폐렴 등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면서도 우리 민중사상의 원형인 <버선발 이야기> 집필에 매달려 이듬해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파인텍’ 굴뚝 고공농성 해결, 고 김용균 청년비정규직 진상규명 등을 위해 사회원로 시국선언을 개최하는 등 눈을 감기 전까지 예술가와 투사로서의 삶을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병동에서 생전 그가 마지막으로 육필로 쓴 글도 최근 한진중공업 복직을 촉구하는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34일간의 도보행진을 벌인 “김진숙(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힘내라”였다. 영원한 투사 백기완의 꿈은 거리와 광장에서 아직 오지 않은 해방을 노래하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스러지는 것이었다.


■연보
통일, 유신 철폐, 노동 해방…걸어온 삶이 시대의 염원이었다
■주요 저서
* 시집
<젊은 날>(1982년, 옥중시·비매품)
<이제 때는 왔다>(1985년, 풀빛출판사)
<백두산 천지>(1989년, 도서출판 민족통일)
<아! 나에게도>(1996년, 도서출판 푸른숲)

* <해방의 노래 통일의 노래>(1985년, 화다출판사·통일문제연구소)

* 평론집/ 수필집
<항일민족론> <항일민족시집>(1971)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1977)
<거듭 깨어나서>(1985)
<통일이냐 반 통일이냐>(1987)
<나도 한때 사랑을 해본 놈 아니오>(1991)
<그들이 대통령이 되면 누가 백성노릇을 할까?>(1992)
<벼랑을 거머쥔 솔뿌리여>(1999)
<백기완의 통일이야기>(2003)
<부심이의 엄마생각>(2005)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2009)
<두 어른>(2017)

* 번역서
<앎과 함 문고>
<원저 :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미국 노동운동 비사>(1974~79년 전 5권으로 출간)

* 자료집(백범사상연구소 연구 문헌)
<백범어록>
<내가 걷는 이 길은>(바로 잡은 백범일지)
<도왜실기>(해설)

* 공저(共著)
<해방전후사의 인식>(1979)
<민족·통일·해방의 논리>(1984)
<가자 민중의 시대로>(1988년, 통일문제연구소 편)
<아, 통일>
<해방의 노래 통일의 노래>
<엄씨들의 행진은 이제부터다>
그외 연구논문 다수

* 옛이야기
<우리 겨레 위대한 이야기>(1989)
<이심이 이야기>(1991)
<장산곶매 이야기>(1993)
<장산곶매 이야기 완결판>(2004)
<따끔한 한모금>(가제본)(2007)
<하얀 종이배>(초고 완성)(2012)
<버선발 이야기>(2019)

* 영화극본
<단돈 만원>(1994)
<대륙>(1995)
<쾌진아 칭칭 나네>(1995)

* 계절마다 내는 책
<노나메기> (2000년부터·1~9호까지 발행)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2151154001&code=100100#csidx489489e8702dd8fb09e82c552e1e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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