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포럼

젊고 멀쩡한 사람이 왜? 편견에 두번 우는 요양보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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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6-09 19:16 조회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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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대한민국 요양 보고서 3부 대안 ③에필로그
요양원들 학대·비리 난무하고 중년여성 보호사는 극한 노동
돌봄 노동·환자 모두 존중받게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 시작을
경기도 부천 ㅇ요양원에서 일한 지 15일째 되던 2월12일 오전, 요양보호사 권지담 기자가 영상 일기를 찍고 있다. 이날 주제는 이 요양원에서 5년간 머물렀던 102살 정순실(가명) 할머니가 새벽에 숨졌다는 이야기였다.
경기도 부천 ㅇ요양원에서 일한 지 15일째 되던 2월12일 오전, 요양보호사 권지담 기자가 영상 일기를 찍고 있다. 이날 주제는 이 요양원에서 5년간 머물렀던 102살 정순실(가명) 할머니가 새벽에 숨졌다는 이야기였다.
“자리가 다 찼어요. 워낙 인기가 좋아서….”
“신청 마감됐습니다.”
“다른 데 알아보셔야겠네요. 아마 자리 없을걸요?”
9개월 전인 지난해 9월6일. 20곳 넘는 요양보호사 교육원에 전화를 돌렸습니다. 야간·주말반은 이미 마감된 지 오래였고 평일에도 자리가 없었습니다. 겨우 경기도 부천의 한 교육원에 자리가 났다고 했습니다. 한 수강생이 갑자기 등록을 취소한 덕분이었죠. 교육원당 정원이 40명인데 이런 실정이라니, 요양보호사 자격증의 인기를 실감했습니다.

9월26일 교육원 수업 첫날. 수강생 40명 가운데 3명을 빼고 대부분이 50대 이상 중년 여성이었습니다.
“아이 떨려. 이게 얼마 만의 공부야.” “교육원 온다고 오랜만에 화장했어. 마지막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 구름 한점 없이 하늘이 파랗던 가을날, 필기구와 노트를 꺼내 든 중년 여성 수강생들은 설렘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수업이 시작되자 교육원장이 성큼성큼 들어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8년 연속 요양보호사 합격률 전국 1위, 여기는 전국에서 요양보호사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곳입니다.” 원장은 득의양양한 얼굴로 수강생들을 둘러봤습니다.
그러다 원장은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습니다. “여러분, 공부 잘한다고 요양을 잘하는 건 아니에요. 요양보호사 일 중 40%는 시험과 상관이 없어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예를 들어볼게요. 중풍 환자가 마사지해달라는 거 성희롱 아니에요.” 첫 예시가 ‘성희롱’이라니, 당황스러웠습니다. “오른쪽이 마비된 중풍 환자가 처음엔 무릎을 주물러달라고 하더니 다음은 허벅지로, 다음은 침대 위에 올라와서 등까지, 수위가 높아졌어요. 요양보호사가 홧김에 ‘어차피 (성 기능이) 되지도 않는 것이’라고 했다가, 환자 아내가 요양보호사를 고소했죠.”
‘성희롱’과 ‘고소’라는 단어에 교육원을 감돌던 설렘은 순식간에 날아갔습니다. 원장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물건을 훔쳐갔다거나 밥을 먹고 또 밥을 차려달라는 치매 노인의 말에 큰 의미를 두지 마세요. 말대답을 했다간 싸움만 나요. 아시겠죠?” 성추행을 경험해도 고소를 당하고, 말도 안 되는 요구에도 무조건 순응해야 하는 직업. ‘요양보호사’ 다섯 글자에는 감내해야 할 많은 것이 담겨 있었습니다.
2018년 10월17일 부천 요양보호사 교육원의 종강파티 날. 권지담 기자와 함께 교육을 받은 수강생들이 앞치마를 입고 사진을 찍고 있다.
2018년 10월17일 부천 요양보호사 교육원의 종강파티 날. 권지담 기자와 함께 교육을 받은 수강생들이 앞치마를 입고 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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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 열풍’…“마지막 일자리”
“나이 들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
수업 첫날 점심시간, 분식집에서 함께 국수를 먹으며 김주혜(가명·64)씨가 말했습니다. 김씨는 베이비시터부터 위탁모까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다고 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모두 돌봄 일이라는 게 조금 슬펐습니다. “아이 돌보는 일이 잘 맞았지만 수입도 일정치 않고 60대가 넘어가면서 하기 어려워지더라고.”
그래서 김씨는 ‘아이’에서 ‘노인’으로 돌봄의 대상만 바꿨습니다. 노인 돌봄은 국가가 주는 자격증이 있으니 뭔가 다르지 않을까 싶었던 거지요. 맞은편에 있던 양정숙(가명·59)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습니다. “더 나이 들어서 치매가 올까 봐 무섭고, 그 전에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등록했어.” 양씨는 환갑의 나이에도 매일 3분단 맨 앞줄에 앉아 열심히 수업을 들었습니다. 결석도 없습니다. 양씨의 목소리에는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일할 수 있을 때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조용히 있던 박귀숙(가명·69)씨는 “조금이라도 생활비에 보탬이 되고자 왔다”고 입을 뗐습니다. 아들과 둘이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엄마가 요양 받을 나이에 뭘 요양보호사가 되냐’며 핀잔을 줬지만 집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박씨는 버스비 1300원을 아끼려 공짜로 탈 수 있는 지하철만 이용한다고 했습니다. 중년 여성들은 뜨거운 국수를 후루룩 넘기며 ‘요양보호사’를 감내해야만 하는 까닭을 다짐하듯 말했습니다. 생애 마지막 승부인 것처럼 비장하게 말이죠.
도전은 쉽지 않았습니다. 평균나이 56살인 40명의 수강생이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수업에 집중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이고 허리야.” “머리 아파.”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지.” “졸려죽겠네.”
수업이 하나씩 이어질 때마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났습니다. 잠이 와서 뒤에 서 있는 이, 이리저리 팔을 흔들어보는 이 등 고3 학생 못지않게 필사적이었습니다. 떡과 빵, 사탕, 초콜릿, 커피믹스 등 수강생들 책상에는 항상 잠을 쫓기 위한 간식이 놓여 있었습니다.
강의 시간에 졸더라도 교육원에 올 수 있다면 그래도 다행입니다. 몇몇 수강생은 제시간에 교육원에 오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총무님, 내 거 프린트 좀 챙겨줘. 딸 아기를 보느라 오전에는 못 오거든. 꼭 좀 부탁해.” 교육원에서 저는 ‘총무’였습니다. 나이가 제일 어리다는 이유로 뽑혀 회비와 청소당번 관리 등 잡일을 맡았습니다. 제 오른쪽에 앉았던 심미숙(가명·58)씨는 부탁 단골손님이었죠. 손녀를 돌보느라 매일 오후 1시가 되어서야 교육원에 오는 심씨는 늘 푸석한 민낯이었습니다. 아이를 돌보다 서둘러서인지 옷매무새는 항상 흐트러져 있었죠.
제 짝꿍 신숙희(가명·50)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침마다 제게 교과서를 책상에 놔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고2 아들과 10살 늦둥이 딸을 학교에 보내고 오려면 오전 9시까지 등원은 무리라고 하더군요. 신씨는 교육을 모두 마칠 때까지 ‘지각생’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습니다.
노인을 돌보기 위해 온 수강생들은 이미 누군가를 돌보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오후 4시30분인데, 교육원에 다닌 한달 동안 회식은 불가능했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수강생들은 아픈 부모와 시부모, 자식과 남편 등을 돌보러 가야 했습니다. 그들에게 ‘돌봄’은 평생의 굴레였습니다. 푸석한 얼굴과 지각을 미안해하는 표정에서 저와 늦둥이 남동생을 키우며 직장에 다녔던 엄마의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노인에게 최고 행복은 편안히 먹고, 먹은 만큼 싸는 거예요.”
간호사 출신의 교육원 선생님은 요양보호사의 업무가 노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매번 강조했습니다. 간병인보다 처우도 좋다고 했습니다.
“간병인은 퇴직금도 없고 경력 인정이 안 되지만 요양보호사는 그만두지만 않으면 월 170만원을 가져갈 수 있어요. 로봇이 모든 것을 하는 시대에 앞으로 없어지지 않을 직업은 간호사와 요양보호사예요. 우리는 국가 전문 자격증을 딸 전문직이에요.” 선생님이 말한 핑크빛 미래를 들으면서 50대 이상 중년의 여성 수강생들은 ‘저임금 일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필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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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은 못 해”…눈물의 취업기
“어쩌죠. 며느리들이 부담스러워해서….”
집안일과 육아 경험이 없는 기자가 미숙해 보여서일까요. 기자를 환영하는 요양기관은 없었습니다. 목소리만 듣고 전화를 끊어버리거나, 나이를 말하면 ‘잘못 전화한 거 아니냐’며 의심을 받았습니다. 보통 직장에서 선호하는 ‘어린 나이’와 ‘미혼’이라는 ‘스펙’은 노인 돌봄 시장에서 되레 걸림돌이었습니다.
“젊고 멀쩡한 사람이 왜 요양보호사를 해요?” 240시간 교육을 마치고 나온 제가 요양보호사 취업 시장에 뛰어들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부천의 한 요양원장은 저를 붙들고 ‘왜 요양보호사를 하면 안 되는지’ 20분 동안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한심하게 쳐다보며 “얼른 돌아가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라”며 내쫓은 곳도 있었습니다. “선생님 얼굴은 누가 봐도 이 일을 할 거라 믿기지 않는 얼굴이잖아요. 요양보호사 하려는 젊은 사람들은 ‘모습’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그것도 선입견이지만….” 요양원 10곳을 돌면서 제가 받은 질문과 시선은 요양보호사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보여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부천의 ㄱ요양원에서는 황당한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ㄱ요양원장은 면접 보러 온 제게 다짜고짜 ‘현대자동차’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왜 망한지 알아요?”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젊은 분들 강성 노조예요. 강성 노조 하는 분들은 현대차가 많아요. 그분들 때문에 하루 벌어서 하루 사는 사람들은 피가 마르는 거예요.” 원장은 제가 말할 틈은 주지 않았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마음은 40대가 돼야 하는 거예요. 어른스럽고 성숙해야 한다는 거죠. 원장이 좋은 걸 가르치는데, 업무를 하는데 사사건건 하면 안 되잖아요. 나는 얼굴 예쁘고 똑똑한 사람보다 마음이 착한 사람, 일하고 싶은 사람을 뽑아요.”
원장의 메시지는 명료했습니다. ‘노조를 만들거나 불만을 제기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일해라.’ “최저임금이 올라서 이제 한달에 175만원 정도 돼요. 작년만 해도 157만원이었어요. 지금은 많잖아요. 그 어떤 직장보다 괜찮아요.” 30분 동안 면접이 아니라 훈계를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면접이 끝난 뒤, 일어서는 제게 원장은 명함을 하나 줬습니다. 자신을 사업가와 정치인이라고 소개한 요양원장의 명함에는 여러 직책과 운영하는 기저귀업체 이름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전문직이잖아, 전문직. 호호.” 수강생들은 교육원에서 수업을 들으며 국가 자격증이 있는 ‘전문직’으로 당당히 일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품었습니다. 궂은일이지만 누군가의 마지막을 책임진다는 생각에 잘해야겠다는 열정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 자부심과 열정은 요양보호사로 취업도 하기 전에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요양보호사가 되려면 자부심과 열정보다는 50대 이상의 나이와 연륜, 불만을 절대 내비치지 않는 ‘인내심’이 필요했습니다. 교육원 선생님이 말했던 ‘핑크빛 미래’는 환상이었던 걸까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했던 교과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했던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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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에서도 집에서도 ‘아줌마’…위대한 돌봄 노동자
‘제발, 딱 1분만 앉고 싶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앉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앉을 수 없다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인지 몰랐습니다. “다리가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르는 저를 보며 고참 요양보호사 ‘쌤’들은 “요양보호사가 되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말해줬습니다.
교육원에서는 분명 노인들 곁에서 말벗을 해주고 사랑과 애정을 담아서 눈을 맞추라고 했는데, 현실은 침대에 걸터앉기도 힘들었습니다. 처음 인천 ㅊ요양원에서 사흘간 일했을 때, 그저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고만 싶었습니다. 신입인 제가 눈치 안 보고 앉을 수 있는 곳은 시시티브이(CCTV)가 없는 창고와 화장실뿐이었습니다. 집에서는 안 보는 아침드라마와 연속극이 요양원에서 일할 땐 왜 그렇게 재밌어 보이던지…. 입에서 단내가 날 만큼 힘들 때, 노인 옆에 앉아서 딱 10분만 티브이를 보는 것이 제 소원일 정도였습니다.
영하 10도, 한파주의보가 발령됐는데 젖은 빨래를 큰 고무 대야에 담아 옥상에 널어야 했습니다. 물에 젖어 몇배는 무거워진 빨래를 낑낑거리며 들고 올라가서 널다 보면 어느새 손이 곱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것은 1인실에 있는 노인의 보호자가 한 말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여기 방 안에 빨래 널지 말아주세요.” 저와 함께 1월부터 일하기 시작한 신입 요양보호사와 저는 그 뒤부터 하루에 세번씩 빨래를 옥상에 널고 걷어야 했습니다. 1개당 1천원도 안 될 것 같은 방문용 실내화 30개를 손빨래하고, 김치도 미리미리 잘게 썰어서 채워 넣어야 했습니다. ‘보호’와 ‘돌봄’보다 더 많은, 수많은 허드렛일이 두 손에 떨어졌습니다.
제 자신이 초라해진 순간도 여러번입니다. 프로그램이 있는 날이면 제 노래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노인들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고 탬버린을 치며 트로트를 불러야 했습니다. 요양보호사 쌤들과 블루스를 추며 땀이 날 때까지 허리를 흔들기도 했습니다. 차라리 기저귀를 가는 게 낫지, 반응이 없는 치매 노인들 앞에서 재롱 잔치를 하는 것만큼 비참했던 순간이 없었습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저는 매번 무대에 나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야 했습니다. “요양보호사는 팔방미인이어야 해요.” 교육원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말한 ‘팔방미인’은 청소, 빨래, 설거지, 김치 썰기, 춤, 노래, 탬버린 흔들기, 기저귀 갈기 등을 모두 군말 없이 해내야 한다는 뜻이었다는 걸, 요양원에서 일하면서 깨닫게 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또 부끄러워해야 했습니다. 옆에서 저보다 더 열심히 허리를 흔드는 50~60대 요양보호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중년 여성들은 요양원에서만이 아니라 삶의 전반에서 이 모든 것을 감내하면서 살아온, 강요당한 ‘팔방미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사회가 돌봐야 할 노인과 아이들을 돌본다면 사회는 이들을 우선해서 돌봐야 하지 않을까요. 요양원에서 한달 동안 일하면서 내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최미자(가명) 할머니가 영양식이 담긴 플라스틱 컵을 들고 있다. 치매가 심한 할머니의 손에는 노란 테이프로 고정한 보라색 수면양말이 365일 씌워져 있다. 기저귀를 풀어 대변을 벽이나 침대 등에 바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최미자(가명) 할머니가 영양식이 담긴 플라스틱 컵을 들고 있다. 치매가 심한 할머니의 손에는 노란 테이프로 고정한 보라색 수면양말이 365일 씌워져 있다. 기저귀를 풀어 대변을 벽이나 침대 등에 바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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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이제는 마주하고 논의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노인 돌봄 문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요양보호사와 요양시설 운영자, 담당 공무원과 전문가, 국회의원 보좌관 등에게 공통으로 들은 말입니다. “저도 저와 언니들이 엄마를 돌아가며 모시고 있어요. 솔직히 정답이 없어요.” 보건복지 분야에서 10년 넘게 연구한 연구원들조차 이렇게 토로할 정도였습니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정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주거와 돌봄, 요양과 보건의료 등이 통합된 커뮤니티 케어는 ‘방문진료’의 주체인 의료계의 반대와, 여러 주체를 책임지고 통합할 기관의 부재로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정부는 국공립 장기요양기관을 늘리고 싶지만, 민간기관 운영자들과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주저하고 있습니다. 노인은 늘고 장기요양보험 기금은 고갈된다는 뉴스가 나오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사실 장기요양보험제도를 운용하고 시행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구성원들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노인과 보호자, 이들을 위해 일하는 요양보호사와 간호사 등 직원들, 노인을 보호하고 챙겨야 할 책임이 있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까지 각자 위치와 구실은 다르지만, 돌볼 부모가 있고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나이가 될 것이란 점은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우리 사회의 고위층이라고 불리는 교수나 의사 등 전문직들도 부모와 본인의 돌봄 문제에선 특별히 다른 해결책이 없을 테니까요.
5일치에 전해드린 대안 정책들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노인 돌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요양원이랑 유치원이랑 차이점이 뭔지 알아요? 유치원은 엄마들이 어떻게든 이 문제를 공론화해서 적극적으로 바꾸려고 하죠. 요양원은 그 반대예요. 모르고 싶고 알아도 모르는 척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이죠.”
이 역시 전문가들이 입 모아 말했습니다. 자격 기준이 낮고 ‘사립’이 난무해 관리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학대와 비리, 그런데도 대부분의 운영을 민간에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 요양원과 유치원은 공통점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전문가와 돌봄 현장 관계자들은 “요양원 문제는 드러내고 꺼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치원과 다르다”고 짚었습니다. 부모를 직접 모시거나 혹은 자주 찾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현실을 부정한 채 요양기관에 입소한 부모의 ‘무탈’과 ‘행복’을 바라는 것이 보호자 입장에서는 마음 편하기 때문입니다.
“기자님이 치매 부모 요양해봤어요?” “기자님이라면 요양원 안 보낼 수 있어요?”
기사가 나간 뒤, 어쩔 수 없이 부모를 요양원 등 시설에 맡긴 안타까운 사연들이 이메일과 기사 댓글로 쏟아졌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자신 없습니다. 당장 제 부모님이 치매에 걸리거나 거동이 불편해지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데, 그 결정에 선뜻 “네, 제가 돌봐야죠”라고 답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을 요양원에 보낸다면 최대한 자주 들여다보고 찾을 것 같습니다. 수백억원을 들여 지은 시설과 질 높은 서비스도 가족의 방문과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만약 장기요양보험금이 부족하다면 기꺼이 더 낼 것입니다. 우리가 낸 세금이 장기요양기관 민간 운영자들의 개인 호주머니로 들어가 낭비되지 않는다면 말이죠.
‘대한민국 요양 보고서’로 인해 하루아침에 장기요양보험제도가 개선되거나 국공립 장기요양기관이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노인 돌봄 문제가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인정합니다. 다만 기사를 읽으신 분들이 한번이라도 사회적 돌봄에 대해 고민하고, 사회적 돌봄을 떠맡고 있는 중년 여성들의 노동에 시선을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노인 돌봄 문제는 ‘불편한 진실’에만 머물지 않을 겁니다.
기억해주세요. 치매에 걸리고 움직일 수 없는 노인, 그리고 이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 모두 존엄할 권리가 있는 인간입니다. 인권, 노동권과 더불어 제대로 된 ‘돌봄권’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데 필요한 핵심 권리입니다. <끝>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896976.html?_fr=mt0#csidxc9577575e9521ba9ea333f3a66b9d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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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이육사

까마득한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때도
참아 이곳을 범하든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소스: ko.exchange-rat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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