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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4월에 떠올리는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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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회 작성일 21-04-15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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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급속하게 악화된 2020년 말 포르투갈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단어가 무엇인지를 두고 설문조사가 있었다. ‘코비드19’나 ‘팬데믹’이 아니라 ‘사우다지(Saudade)’였다. 전문적인 번역가도 다른 외국어로 옮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사우다지 - 포르투갈 사람만이 이 감정을 알 수 있다. 오로지 그들만이 이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단어를 지녔기 때문이다”라고 포르투갈의 민족시인 페르난두 피수아(Fernando Pessoa, 1888~1935)도 이를 강조했다.


사우다지의 정확한 어원은 여전히 분명치 않다. ‘외로움’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또는 ‘우울’을 뜻하는 아랍어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다. 널리 이용되는 <후아이스(Houaiss) 포르투갈어 사전>은 이 단어의 복합적인 의미를 “불완전함에 대한 어떤 우울한 감정이다.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부재로 인해서 또는 과거에 특별하게 원했던 체험이나 즐거움이 사라진 상황을 뒤돌아보는 생각과 연관되어 있다”고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해양제국 포르투갈이 흥망성쇠를 겪는 과정에서 거친 바다와의 싸움에서 돌아오지 못한 영혼을 애타게 기다렸던 조상들처럼 그의 후예들도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코로나19로 잃은 비통 속에서 사우다지의 감정을 토로한다.

이런 배경을 쫓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한(恨)’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 단어도 사실 ‘정(情)’처럼 외국어로 번역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마음속에 응어리와 같은 무엇이 걸려 있는, 어떤 불완전한 상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사우다지와 비슷하다. 그러나 차이도 있다. 아프지만 행복했던 기억이기에 사우다지는 이를 다시 감싼다. 이와는 달리 한은 이를 풀어야만 하는 숙제를 우리에게 남긴다. 이런 의미에서 한은 사우다지보다 더 적극적이다. 그래서 한을 푼다는 말처럼 그 속에는 종종 복수의 감정도 섞여 있다.

1948년 제주 4·3의 비극과
7년 전 4월16일의 세월호 참사
그리고 올해 서울·부산 4·7 재·보선
디지털 시대, 각자 도생하는 청년들
‘적폐’ 지탄받는 야당 후보에 몰표
과거의 잣대로 진보·보수 못 나눠

‘한’과 ‘사우다지’만 부르는 4월
그래서 나는 다른 4월을 기다린다

한풀이의 의미는 지노귀굿이나 살풀이춤, 판소리 등에서 잘 드러난다. 이와 비슷하게 사우다지의 정서도 운명이란 어원으로부터 유래한 ‘파두(Fado)’라는 노래 형식을 빌려 표출된다. 2011년 인류의 무형문화재로 선정된 파두는 본디 리스본의 빈민가 모라리아(Mouraria) 지역의 허름한 술집에서 시작되었다. 우리의 창(唱)에서도 느낄 수 있는 감흥을 불러오는 파두는 클래식 기타와 이보다 조금 작은 포르투갈 기타의 반주에 따라 여성이나 남성이 혼자서 부른다. 허스키한 음성이 특징이다.

파두의 여왕으로 불렸던 아말리아 호드리게스(Amalia Rodriques, 1920~1999)가 옛 수도이자 오래된 대학도시 코임브라(Coimbra)를 주제로 한 파두 ‘포르투갈의 4월’은 1950년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코임브라는 가르침이다/ 꿈과 전통/ 노래의 선생/ 달은 대학, 책은 여성/ 이를 아는 사람만 사우다지를 기억한다/ 추발 수림의 코임브라는 여전히 수도/ 영원한 포르투갈 사랑의 도시/ (…) / 너는 사랑의 원천/ 포르투갈 4월의 꿈을 너에게서 본다/ 로맨스를 즐겼을 때 우리는 몰랐다/ 내 머리는 구름 속으로, 내 심장은 뛰고/ 미칠 듯이 말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아팠던 기억에서도 행복한 감정을 담을 수 있는 4월의 코임브라를 노래한 이 파두를 들으면 나는 한을 담은 1948년 4월의 제주를 생각하게 된다. “내 거듭 말하노니/ 한국 현대사 앞에서는/ 우리는 모두 상주이다/ 오늘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 그 아름다운 제주도의 신혼여행지들은/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 할 학살의 장소이다/ 그곳에 뜬 별들은 여전히 눈부시고/ 그곳에 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 별들과 꽃들은 모두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다.”

장시 ‘한라산’을 발표한 이산하 시인과 오래전에 통화한 적이 있다. 시를 발표한 당시까지도 시인이 제주 땅을 밟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놀랐다. 그러나 역사와 현실을 관통하는 그의 시적 상상력에 감탄했다. 1950년대 중반 여름 내가 처음 찾은 제주에는 원래 노란 유채꽃은 없었다. 빨치산 대장 이덕구에 대한 신화, 그리고 마을 주민을 빨치산으로부터 격리하기 위해서 쌓았다는 높은 돌담과 경비초소, 그리고 돌담을 따라 빈 깡통을 곳곳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긴 새끼줄이 나의 기억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2004년 8월 초, 40년 만에 제주를 하루 찾았다. 당시 조성 중이던 ‘4·3 평화공원’에서 원혼을 위로했고 희생자의 명단 가운데서 면식도 없었던 친·인척의 이름도 찾을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의 흔적도 희미해지기 마련이지만 4·3의 비극을 집요하게 추적했던 재야의 역사학자 이도영 박사를 잊을 수 없다. 그는 미국의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이 있는 워싱턴의 근교에서 양계업을 하면서도 먼지 쌓인 4·3에 대한 자료들을 뒤지면서 자신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휩쓸었던,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간을 재구성했다. 50년의 한을 한 올씩 풀어나가는 심정으로 엮었다는 <죽음의 예비검속 - 양민 학살 진상조사보고서>를 남기고 이국땅에서 그만 눈을 감았다.

4월의 한은 7년 전의 세월호 참사에도 드리웠다. 250명의 어린 학생을 포함, 304명의 목숨을 시퍼런 남해의 찬 바다의 물결이 삼켰으나 아직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2년 전 유가족 대표들을 베를린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어린 자식들을 졸지에 잃고 한을 가슴속에 지닌 부모를 위로할 수 있는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학생들이 지금 살아 있다면 사회 현실에 대한 이런저런 발언과 행동을 하는, 세대 사회학이 규정하는 이른바 ‘Z세대’로서 사회초년생이 되었겠다.

얼마 전 ‘건달할배’로 유명한 효암학원 이사장 채현국 선생의 부음이 들려왔다. 같은 학과 선배였으나 처음으로 1990년대 초 베를린에서 만났다.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의 이토 나리히코(伊藤成彦) 교수도 자리를 같이했다.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인 그도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 같은 철학과 출신으로 이른바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1982년 10월8일 새벽, 48세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신향식 선배의 한 많은 삶을 이야기하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해학과 유머가 넘쳐나는 당대의 거인이었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라는 젊은이를 향한 그의 뜨거운 충고가 있다. 별로 내놓을 것도 없는 과거의 추억을 밑천 삼아 미래의 삶에 이런저런 훈수나 두려는 기성세대의 작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기도 하다.

이번 서울과 부산에서 실시된 시장 보궐선거에서 20~30대가 60~70대에 못지않게 이른바 ‘적폐세력’으로 지탄받고 있는 야당 후보자에게 몰표를 던졌다. 이를 두고 젊은 세대로부터도 버림받은 ‘진보’는 이제 끝장이라는 식으로 환호하거나 아니면 낙담하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와 함께 자란 세대가 60대나 70대와 같은 가치관을 지닌 것으로 본다면 이는 큰 착각이다. 디지털 시대에 각자도생해야 하는 세대에게 과거의 잣대만을 들이대면서 진보니 보수니 하는 구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 역사가 안고 있는 기막힌 한도 모른다고 이들 세대를 타박할 수도 없다. 그들이 생각하는 진보는 오늘 60~70대의 대부분이 열을 올리며 비난하거나 아니면 이들 중 일부가 아직도 변호하는 그런 진보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 세대보다 더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더 가난한 이 세대는 보편적 이해를 대변한다는 정치에 회의적이고 냉소적이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누구보다도 ‘튀어서’ 남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문제가 절박하게 느껴지는 세대다.

세대갈등과 함께 의무감과 자유로운 삶 사이의 긴장을 그린 희곡 <돈 칼로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꿈은 바로 감옥에서 꾸게 된다”는 경구를 프리드리히 실러는 남겼다. 청년 세대에게 지금 이 이상의 말이 있을 수 없다고 느껴진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낸다는 4월에 한반도와 이로부터 1만여㎞나 떨어진 이베리아반도에 사는 동시대인의 삶이 모두 코로나로 시작하고 코로나로 저무는 것 같다. 한만 떠올리거나 사우다지만을 불러오는 4월이 아닌 다른 4월을 그래서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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