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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장’ 개념 정립한 세계적 철학자 하버마스 별세...향년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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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77회 작성일 26-03-16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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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하버마스(1929~2026). 위키미디어 코먼스

‘공론장’ 개념 정립한 세계적 철학자 하버마스 별세...향년 96
제자 송두율 구명운동 나서기도

20세기 후반 세계 철학과 사회 이론을 대표하는 독일 출신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14일(현지시각) 별세했다. 향년 96.

그의 주요 저작들을 내온 독일 주어캄프 출판사는 하버마스가 1971년부터 살던 뮌헨 인근 슈타른베르크에서 눈을 감았다고 이날 밝혔다.

데페아(dpa) 통신은 “하버마스는 20세기에 매우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명으로 말년까지도 활발히 활동했으며, 독일에서 정치적 쟁점에 꾸준히 입장을 밝혀온 몇 안 되는 공공 지식인이었다”고 전했다. 하버마스는 2015년 유럽 ‘난민 위기’ 당시 망명권을 옹호했고, 우익 포퓰리즘과 배타적 민족주의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유럽연합의 통합을 지지했다. 현지 언론은 “하버마스는 개방적 민주주의라는 자신의 코스모폴리턴(세계시민주의) 이상에 끝까지 헌신했다”고 평가했다.

하버마스는 민주주의, 공론장, 의사소통, 합리성이라는 개념들로 현대 사회를 설명하는 이론적 틀을 구성했다. 1962년 저작 ‘공론장의 구조변동’은 민주 사회에서 여론과 공론장의 발전과 중요성을 탐구한 기념비적 연구다. 그는 근대 유럽의 살롱·카페·독서회 등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진 시민 토론 공간을 ‘공론장’(public sphere)이라는 개념으로 정식화했다. 그에게 공론장은 시민이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통해 권력을 감시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공간, 현대판 아고라였다.

하버마스는 1929년 6월 독일 뒤셀도르프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괴팅겐·취리히·본 등 여러 대학에서 철학·심리학·독문학·경제학 등을 공부했다. 1954년 본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사회비판이론을 선도한 프랑크푸르트대학교 사회연구소에 들어가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조교로 활동했다. 그 과정에서 하버마스는 비판이론 전통을 이어가는 프랑크푸르트학파 2세대의 대표적 이론가로 자리 잡았다. 비판이론은 단순히 사회 현상과 구조를 연구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현존 사회를 비판하고 대안 사회 비전을 탐구한다.

하버마스의 청소년기는 나치 독재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격변을 관통했다. 그는 선천성 구순구개열 장애를 갖고 태어나 유아기에 두차례 수술을 받은 까닭에 가벼운 언어장애가 남았다. 이 때문에 그는 당시 독일 청소년은 누구나 가입해야 했던 ‘히틀러 유겐트’(나치의 청소년 조직)에서 정규 대원이 아닌 응급처치반 하급요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뒷날 “유겐트 정규 복무를 벗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고 돌이켰다. 언어장애는 그가 의사소통 연구에 영향을 미친 한 요인으로 거론된다. 하버마스는 생전에 자신의 말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기억을 회상하며, 구어의 중요성을 “그것 없이는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없는 공통성의 층위로 경험했다”고 말한 바 있다.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나치 독일의 패전으로 막을 내린 당시 하버마스는 15살이었다. 그는 뒷날 “우리가 살았던 그 체제가 정치적으로 범죄체제였다는 것을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며, 그 깨달음이 자신을 철학과 사회이론의 길에 들어서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고 밝혔다. 전쟁과 독재의 경험, 그리고 전후 독일 사회가 과거와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그의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학문적 여정은 나치 시대의 유산과 씨름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셈이다.

20세기 후반 서구 사상에서는 니체·하이데거·푸코로 이어진 권력과 해체의 철학이 큰 흐름을 이뤘지만, 하버마스는 그와 다른 길을 택했다. 그는 민주주의 사회가 여전히 합리적 토론과 공적 담론을 통해 스스로를 교정할 수 있다는 계몽주의적 신념을 끝까지 옹호한 사상가였다. 하버마스는 대표작 ‘의사소통행위 이론’(1981)에서 언어와 소통을 사회 질서의 핵심 원리로 제시했다. 사람들이 상대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대신 공론장에서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상호 이해와 합의를 추구할 때, 그 소통 자체가 사회 질서를 지탱하는 합리성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학문적 연구에 머무르지 않고 공적 논쟁에 적극 참여한 지식인이었다. 1980년대 독일 역사학자 논쟁에서 그는 홀로코스트의 역사적 책임을 상대화하려는 시도를 비판하며 독일 사회가 과거와 정직하게 마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유럽 통합과 민주주의의 초국가적 확장을 주장했다. 하버마스는 최근 10여년 새 독일 사회에서 나치에 동조적인 극우 세력이 급부상하는 것에도 우려의 시각을 보였다. 현대 정치철학에서 널리 논의되는 ‘헌정 애국주의’(constitutional patriotism)라는 개념도 그의 정치 사상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하버마스는 앞서 자신의 제자였던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학 교수가 2003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되자 서울지방법원(현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부에 송두율 석방을 위한 탄원서를 보내는 등 구명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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