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도 못 건드린 금강송 260그루 픽픽 쓰러져…뿌리째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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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03-31 17:00 조회 2,721 댓글 0본문
2024년 3월19일 오전 경북 울진 소광리 일대 금강송 군락지에서 발견된 뿌리째 뽑힌 금강소나무. 녹색연합 제공
‘왕의 나무’ 금강소나무 기후 스트레스에 폭설 겹쳐
200년 된 금강송도 고꾸라져… 탐방로 덮치기도
곧게 뻗은 금강소나무가 뿌리째 뽑혀 경사면을 타고 흘러 내려왔다. 가지엔 아직 푸른 잎이 빽빽하게 붙어 있는데 뿌리만 붙어 있어야 할 곳을 붙잡지 못했다. 뿌리가 뽑혀 제자리에서 넘어진 소나무, 뿌리째 뽑혔지만 옆 나무에 기댄 소나무, 도로 위로 쓰러진 소나무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에 들어왔다. 나무가 쓰러지며 직격한 전신주는 이쑤시개처럼 부러졌다.
전선에도 쓰러진 소나무가 군데군데 걸려 있었다. 차와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 바로 위에 위태롭게 걸려 있는 소나무도 있었다. 2024년 2월 경북 울진에 내린 폭설로 도복(쓰러짐) 피해를 본 금강소나무의 모습이다. 폭설로 가지가 부러지거나 휘어진 피해는 있었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뿌리째 뽑힌 피해는 이번이 처음이다.
푸른 잎 빽빽하게 붙인 채로 픽픽…
<한겨레21>은 2024년 3월18~19일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일대를 찾았다. 봉화군 소천면을 지나 36번 국도에 들어서자 도로 옆으로 군데군데 쓰러진 금강소나무들이 보였다. 국도를 빠져나와 소광리에 들어서니 피해가 더 심각했다. 계곡을 따라 난 십이령로엔 쓰러진 나무들을 베어내고 남은 잔재가 쌓여 있었다. 조선 숙종 때 세워져 이곳이 보호구역임을 알렸던 ‘울진 소광리 황장봉계 표석’ 앞도 예외는 아니었다. 표석 앞 계곡 경사면에 있는 금강소나무들이 맥없이 쓰러져 있었다.
경북 울진 소광리 십이령로에서 발견한 금강소나무. 뿌리째 뽑히면서 경사면을 타고 흘러 내려왔다. 류석우 기자
“소나무가 천근성(뿌리가 지표면 근처에 얕게 분포하는 성질) 수종이긴 하지만 보통은 눈이 많이 와도 가지가 부러지지 이렇게 뿌리째 뽑히진 않거든요. 뿌리가 잡아주는 힘이 약하니까 훅 넘어간 거 같아요. 1990년대부터 산을 다녔는데 일부 고산지대를 빼고는 이렇게 뿌리째 뽑힌 피해는 처음 봐요.” 취재에 동행한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이 말했다.
흔히 ‘금강송’이라 불리는 금강소나무는 경북 울진, 봉화, 영덕 등 영동 지방에서 곧게 자라는 수종이다. 줄기가 곧고 튼튼해 조선시대 때부터 궁궐을 짓는 목재로 사용됐다. 재질이 강하고 나무 속이 짙은 황갈색을 띠어 황장목이라고도 불린다. 임금과 왕후의 관인 재궁을 만들 땐 아주 크고 오래된 금강송이 쓰이기도 했다. 이런 쓰임새 덕에 조선시대 숙종 때인 1680년 처음으로 황장봉산으로 지정하고 보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봉화군 춘양면이나 소천면 등의 금강소나무들이 대규모로 벌채됐다. 소광리 등 상대적으로 교통이 불편했던 지역의 금강소나무들만 살아남았다.
해방 이후 정부는 꾸준히 금강소나무 자생지를 관리해왔다. 1959년엔 농림부에서 육종림으로 지정했고, 1982년 천연보호림으로 지정했다. 현재 소광리 일대 3705㏊(서울 여의도 면적 약 13배)는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이자 자연생태 보전지역으로 묶여 있다. 가장 중요하게 보호하는 지역이므로 나무 한 그루 쉽게 베지 못한다. 소광리로 들어가는 길목에만 소나무류 이동 단속 초소가 여러 곳 있을 정도다. 그렇게 귀하게 여기던 금강소나무가 곳곳에 쓰러진 것이다.
산림청은 폭설 직후 소광리 진입도로와 등산로, 숲길 사면 등을 위주로 피해를 조사한 결과 262그루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피해를 입은 금강소나무는 어린나무부터 고목까지 다양했다. 소광리 금강송 에코리움 인근에선 약 200년 된 금강소나무가 뿌리째 뽑혀 도로 위에 쓰러져 있기도 했다. 금강소나무숲길에서 가장 유명한 ‘500년 소나무’도 쓰러질 뻔했다고 한다. 김영훈 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 소장은 “500년 소나무도 저희가 당김줄을 설치하지 않았다면 이번에 쓰러졌을 것”이라며 “나무가 조금 기운 상태라 작년 겨울에 당김줄을 설치해놨는데 그 덕에 피해를 안 보고 잘 넘어갔다”고 말했다.
경북 울진 소광리 내 탐방로가 무너진 모습. 경사면에 있던 금강소나무가 뿌리째 뽑히면서 탐방로를 덮쳤다. 녹색연합 제공
다만 산림청 조사는 진입이 가능한 도로변 위주에서만 진행됐기 때문에 실제 피해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21>은 3월19일 오전 대광천 소광리산림생태관리센터에서 금강소나무숲길 중 하나인 가족탐방길을 따라 약 5㎞ 안쪽까지 들어갔다. 폭설 이후 아무도 진입하지 못했던 곳으로, 관리센터에서도 이날 처음 들어간다고 했다. 탐방로 옆 계곡을 따라 5~10m마다 쓰러진 금강소나무가 보였다. 능선에서 드론을 띄워보니 20m가 훌쩍 넘는 금강소나무들이 곳곳에서 쓰러진 모습이 보였다.
10여년 전부터 늘어난 고사목
소나무숲길에서 내려와 소광천 쪽 임도로 들어갔다. 이곳도 폭설 이후 눈이 녹지 않아 산림청에서 조사하지 못했다. 소광천 계곡을 따라 들어간 지 100m도 지나지 않아 거대한 금강소나무가 길을 막았다. 키가 20m는 족히 넘을 듯했다. 한 팔로 두르지 못할 정도로 두꺼웠다. 이 나무를 시작으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직 치우지 못한 소나무들이 도로에 널브러져 있었다. 길이 나지 않은 안쪽 계곡엔 피해가 더 심했다. 계곡 곳곳에 뿌리째 뽑힌 나무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날 소광천 지역을 500m 남짓 걸으며 맨눈으로 확인한 피해 나무만 100그루가 넘었다. 서 위원은 “아직 조사되지 않은 지역과 안쪽까지 다 합치면 피해 규모는 수천 본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이번 폭설로 인한 도복 피해는 소광리와 왕피리 등 금강송면 곳곳에서 발생했다. 김 소장은 “눈 때문에 임도나 숲길, 탐방로 중심으로 조사한 상태”라며 “눈이 다 녹으면 깊숙한 곳이나 안쪽은 인력을 더 투입해서 정밀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광리 주민들은 금강소나무가 뿌리째 뽑히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결혼한 뒤 50년 넘게 소광리에서 살았다는 이순녀(75)씨는 “이전에도 눈이 많이 온 적은 있지만 이렇게 뿌리째 뽑힌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눈이 비하고 섞여가지고 찰눈이 왔거든. 이게 나무에 붙어서 쌓이니까 그런 거지요. 태풍도 많이 왔지만 태풍 가지고는 나무가 이렇게 안 넘어가요. 눈도 마른눈이었으면 괜찮은데 이번엔 찰눈이 오니까 못 이긴 거 같아요. 이렇게 많이 넘어간 건 처음이에요.”
왜 이런 피해가 발생했을까. 서 위원은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라고 봤다. “최근 10년 사이 울진 인근 금강소나무들이 기후 스트레스로 계속 죽고 있었거든요. 기후 스트레스를 입은 금강소나무 자생지와 이번에 뿌리째 뽑힌 금강소나무 지역이 거의 일치하는 거 같아요. 경사면에 있거나 가장 약해진 나무를 중심으로 이번에 피해를 본 거죠. 기후위기로 인해 지속해서 이 지역 나무들이 스트레스를 받았고, 소나무처럼 뿌리가 옆으로 퍼지는 나무들이 뽑히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실제 울진에선 2008년부터 금강소나무 집단 고사 현상이 관찰되기 시작했다. 국립산림과학원 기후변화연구센터에서 2017년 발표한 ‘울진 소광리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내 금강소나무 고사 지역의 지형 환경 특성 분석’을 보면, 2008년부터 2015년까지 관찰된 고사목은 1956본이었다. 고사목은 고온 및 건조 조건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대 중반부터 자체적으로 모니터링해온 녹색연합도 2022년 금강소나무 고사 실태 자료를 내어 “2010년 전후부터 겨울철이 따뜻해진 것은 물론이고 눈도 적게 내리고 있다”며 “최근 몇 년 사이 겨울철 가뭄, 봄철 더위, 여름 폭염 등이 겹치면서 소나무의 고사가 이어지고 있고, 2022년 들어 고사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경북 울진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 피해 모습. 뿌리째 뽑힌 금강소나무 옆으로 하얗게 변한 고사목이 보인다. 녹색연합 제공
사우나에 오랫동안 갇힌 상태와 같다
전문가들은 이번 폭설로 인한 도복 피해가 이례적인 일이고 새로운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기후위기가 소나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이우균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는 “보통 눈이 많이 오더라도 가지가 부러지는 게 일반적인데 이런 (뿌리째 뽑히는) 피해는 처음 들었다”면서도 “우리나라 전반적으로 기후변화에 의해 소나무가 약화하고 쇠퇴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사우나’를 예를 들어 설명했다. “우리가 사우나에 들어가면 처음엔 좋지만 오래 있으면 못 견디고 나오잖아요. 지금 소나무는 사우나에서 나와야 하는데 못 나오는 상황인 거예요. 이미 저지대에선 소나무 피해가 많고,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점차 (소나무가) 사라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에요. 저도 연구를 계속해왔지만 소나무가 겉으로는 건강해 보여도 10년 전, 20년 전의 상태와 비교해보면 쇠약해져 있거든요. 가지나 잎뿐만 아니라 뿌리도 약해져요. 그렇게 되면 물리적으로 쉽게 쓰러질 조건이 갖춰진 거죠.”
한 식물분류학자는 “고산지대에 있는 침엽수 수종이 뿌리째 뽑히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울진 금강소나무가 뿌리째 뽑히는 건) ‘새로운 현상’”이라며 “나무가 수세가 약해졌거나 뿌리가 약해진 상황에서 눈까지 많이 와서 도복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아직은 가설이고 새로운 현상이기 때문에 관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도 “기후변화로 소나무가 점차 쇠퇴하면서 뿌리가 약해졌을 수 있다”며 “(이번 피해와 관련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폭설로 인한 피해는 앞으로 얼마든지 더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당장의 대응은 2차 피해를 막는 수준의 방안이 전부다. 김 소장은 “당장 도로변은 (금강소나무가) 넘어지면 위험하기 때문에 베어내는 등 조처해야 할 것 같다”면서도 “저희가 대응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이라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산림청은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과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한겨레21>의 질의에 “도로변 나무 제거와 제설 작업을 실시했으며, 6월 말 이전까지 계곡부 등 2차 피해를 예방할 계획”이라고만 밝혔다.
금강송 사이사이 누비던 산양도 살지 못한다
이번 폭설은 금강소나무에만 피해를 주지 않았다. 금강소나무숲길 안쪽에서 뿌리째 뽑힌 나무들 사이에 걸려 있던 산양을 발견한 건 나무를 관찰한 지 한참이 지나서였다. 취재를 마치고 내려가는 길에 탐방로 곳곳에 있던 산양 똥을 유심히 관찰하다 우연히 죽은 산양을 발견했다. 태어난 지 5년 정도 된 수컷 성체였다. 폭설 이후 눈이 녹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안쪽까지 들어오지 못한 탓에 구조가 늦었다. 서 위원은 “먹이를 찾아 점차 밑으로 내려오다가 눈 속에 갇힌 것 같다. 산양은 다리가 짧아 눈이 많이 오면 이동이 어렵다”고 말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된 산양은 전국에 1600여 마리(2020년 기준) 남은 것으로 집계된다. 이 중 100여 마리가 울진·삼척 인근에 산다. 그런데 올겨울 들어 벌써 울진에서만 7마리의 산양이 목숨을 잃었다. 6마리는 숨진 뒤 발견돼 국립생태원으로 옮겨졌고, 1마리는 소광리산림생태관리센터에서 발견해 산양보호협회로 옮겼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발견된 산양들이 대부분 눈 때문에 먹이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체중도 많이 빠진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발견된 산양은 국립생태원 우동걸 박사가 곧바로 현장으로 와 수습했다. 산양을 수습하는 동안 비가 내렸다. 수백 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금강소나무도, 수년 동안 금강소나무 사이를 누비던 산양도 더 이상 제자리에 없었다. 기후붕괴의 현장이다.
‘왕의 나무’ 금강소나무 기후 스트레스에 폭설 겹쳐
200년 된 금강송도 고꾸라져… 탐방로 덮치기도
곧게 뻗은 금강소나무가 뿌리째 뽑혀 경사면을 타고 흘러 내려왔다. 가지엔 아직 푸른 잎이 빽빽하게 붙어 있는데 뿌리만 붙어 있어야 할 곳을 붙잡지 못했다. 뿌리가 뽑혀 제자리에서 넘어진 소나무, 뿌리째 뽑혔지만 옆 나무에 기댄 소나무, 도로 위로 쓰러진 소나무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에 들어왔다. 나무가 쓰러지며 직격한 전신주는 이쑤시개처럼 부러졌다.
전선에도 쓰러진 소나무가 군데군데 걸려 있었다. 차와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 바로 위에 위태롭게 걸려 있는 소나무도 있었다. 2024년 2월 경북 울진에 내린 폭설로 도복(쓰러짐) 피해를 본 금강소나무의 모습이다. 폭설로 가지가 부러지거나 휘어진 피해는 있었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뿌리째 뽑힌 피해는 이번이 처음이다.
푸른 잎 빽빽하게 붙인 채로 픽픽…
<한겨레21>은 2024년 3월18~19일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일대를 찾았다. 봉화군 소천면을 지나 36번 국도에 들어서자 도로 옆으로 군데군데 쓰러진 금강소나무들이 보였다. 국도를 빠져나와 소광리에 들어서니 피해가 더 심각했다. 계곡을 따라 난 십이령로엔 쓰러진 나무들을 베어내고 남은 잔재가 쌓여 있었다. 조선 숙종 때 세워져 이곳이 보호구역임을 알렸던 ‘울진 소광리 황장봉계 표석’ 앞도 예외는 아니었다. 표석 앞 계곡 경사면에 있는 금강소나무들이 맥없이 쓰러져 있었다.
경북 울진 소광리 십이령로에서 발견한 금강소나무. 뿌리째 뽑히면서 경사면을 타고 흘러 내려왔다. 류석우 기자
“소나무가 천근성(뿌리가 지표면 근처에 얕게 분포하는 성질) 수종이긴 하지만 보통은 눈이 많이 와도 가지가 부러지지 이렇게 뿌리째 뽑히진 않거든요. 뿌리가 잡아주는 힘이 약하니까 훅 넘어간 거 같아요. 1990년대부터 산을 다녔는데 일부 고산지대를 빼고는 이렇게 뿌리째 뽑힌 피해는 처음 봐요.” 취재에 동행한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이 말했다.
흔히 ‘금강송’이라 불리는 금강소나무는 경북 울진, 봉화, 영덕 등 영동 지방에서 곧게 자라는 수종이다. 줄기가 곧고 튼튼해 조선시대 때부터 궁궐을 짓는 목재로 사용됐다. 재질이 강하고 나무 속이 짙은 황갈색을 띠어 황장목이라고도 불린다. 임금과 왕후의 관인 재궁을 만들 땐 아주 크고 오래된 금강송이 쓰이기도 했다. 이런 쓰임새 덕에 조선시대 숙종 때인 1680년 처음으로 황장봉산으로 지정하고 보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봉화군 춘양면이나 소천면 등의 금강소나무들이 대규모로 벌채됐다. 소광리 등 상대적으로 교통이 불편했던 지역의 금강소나무들만 살아남았다.
해방 이후 정부는 꾸준히 금강소나무 자생지를 관리해왔다. 1959년엔 농림부에서 육종림으로 지정했고, 1982년 천연보호림으로 지정했다. 현재 소광리 일대 3705㏊(서울 여의도 면적 약 13배)는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이자 자연생태 보전지역으로 묶여 있다. 가장 중요하게 보호하는 지역이므로 나무 한 그루 쉽게 베지 못한다. 소광리로 들어가는 길목에만 소나무류 이동 단속 초소가 여러 곳 있을 정도다. 그렇게 귀하게 여기던 금강소나무가 곳곳에 쓰러진 것이다.
산림청은 폭설 직후 소광리 진입도로와 등산로, 숲길 사면 등을 위주로 피해를 조사한 결과 262그루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피해를 입은 금강소나무는 어린나무부터 고목까지 다양했다. 소광리 금강송 에코리움 인근에선 약 200년 된 금강소나무가 뿌리째 뽑혀 도로 위에 쓰러져 있기도 했다. 금강소나무숲길에서 가장 유명한 ‘500년 소나무’도 쓰러질 뻔했다고 한다. 김영훈 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 소장은 “500년 소나무도 저희가 당김줄을 설치하지 않았다면 이번에 쓰러졌을 것”이라며 “나무가 조금 기운 상태라 작년 겨울에 당김줄을 설치해놨는데 그 덕에 피해를 안 보고 잘 넘어갔다”고 말했다.
경북 울진 소광리 내 탐방로가 무너진 모습. 경사면에 있던 금강소나무가 뿌리째 뽑히면서 탐방로를 덮쳤다. 녹색연합 제공
다만 산림청 조사는 진입이 가능한 도로변 위주에서만 진행됐기 때문에 실제 피해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21>은 3월19일 오전 대광천 소광리산림생태관리센터에서 금강소나무숲길 중 하나인 가족탐방길을 따라 약 5㎞ 안쪽까지 들어갔다. 폭설 이후 아무도 진입하지 못했던 곳으로, 관리센터에서도 이날 처음 들어간다고 했다. 탐방로 옆 계곡을 따라 5~10m마다 쓰러진 금강소나무가 보였다. 능선에서 드론을 띄워보니 20m가 훌쩍 넘는 금강소나무들이 곳곳에서 쓰러진 모습이 보였다.
10여년 전부터 늘어난 고사목
소나무숲길에서 내려와 소광천 쪽 임도로 들어갔다. 이곳도 폭설 이후 눈이 녹지 않아 산림청에서 조사하지 못했다. 소광천 계곡을 따라 들어간 지 100m도 지나지 않아 거대한 금강소나무가 길을 막았다. 키가 20m는 족히 넘을 듯했다. 한 팔로 두르지 못할 정도로 두꺼웠다. 이 나무를 시작으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직 치우지 못한 소나무들이 도로에 널브러져 있었다. 길이 나지 않은 안쪽 계곡엔 피해가 더 심했다. 계곡 곳곳에 뿌리째 뽑힌 나무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날 소광천 지역을 500m 남짓 걸으며 맨눈으로 확인한 피해 나무만 100그루가 넘었다. 서 위원은 “아직 조사되지 않은 지역과 안쪽까지 다 합치면 피해 규모는 수천 본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이번 폭설로 인한 도복 피해는 소광리와 왕피리 등 금강송면 곳곳에서 발생했다. 김 소장은 “눈 때문에 임도나 숲길, 탐방로 중심으로 조사한 상태”라며 “눈이 다 녹으면 깊숙한 곳이나 안쪽은 인력을 더 투입해서 정밀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광리 주민들은 금강소나무가 뿌리째 뽑히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결혼한 뒤 50년 넘게 소광리에서 살았다는 이순녀(75)씨는 “이전에도 눈이 많이 온 적은 있지만 이렇게 뿌리째 뽑힌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눈이 비하고 섞여가지고 찰눈이 왔거든. 이게 나무에 붙어서 쌓이니까 그런 거지요. 태풍도 많이 왔지만 태풍 가지고는 나무가 이렇게 안 넘어가요. 눈도 마른눈이었으면 괜찮은데 이번엔 찰눈이 오니까 못 이긴 거 같아요. 이렇게 많이 넘어간 건 처음이에요.”
왜 이런 피해가 발생했을까. 서 위원은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라고 봤다. “최근 10년 사이 울진 인근 금강소나무들이 기후 스트레스로 계속 죽고 있었거든요. 기후 스트레스를 입은 금강소나무 자생지와 이번에 뿌리째 뽑힌 금강소나무 지역이 거의 일치하는 거 같아요. 경사면에 있거나 가장 약해진 나무를 중심으로 이번에 피해를 본 거죠. 기후위기로 인해 지속해서 이 지역 나무들이 스트레스를 받았고, 소나무처럼 뿌리가 옆으로 퍼지는 나무들이 뽑히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실제 울진에선 2008년부터 금강소나무 집단 고사 현상이 관찰되기 시작했다. 국립산림과학원 기후변화연구센터에서 2017년 발표한 ‘울진 소광리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내 금강소나무 고사 지역의 지형 환경 특성 분석’을 보면, 2008년부터 2015년까지 관찰된 고사목은 1956본이었다. 고사목은 고온 및 건조 조건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대 중반부터 자체적으로 모니터링해온 녹색연합도 2022년 금강소나무 고사 실태 자료를 내어 “2010년 전후부터 겨울철이 따뜻해진 것은 물론이고 눈도 적게 내리고 있다”며 “최근 몇 년 사이 겨울철 가뭄, 봄철 더위, 여름 폭염 등이 겹치면서 소나무의 고사가 이어지고 있고, 2022년 들어 고사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경북 울진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 피해 모습. 뿌리째 뽑힌 금강소나무 옆으로 하얗게 변한 고사목이 보인다. 녹색연합 제공
사우나에 오랫동안 갇힌 상태와 같다
전문가들은 이번 폭설로 인한 도복 피해가 이례적인 일이고 새로운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기후위기가 소나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이우균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는 “보통 눈이 많이 오더라도 가지가 부러지는 게 일반적인데 이런 (뿌리째 뽑히는) 피해는 처음 들었다”면서도 “우리나라 전반적으로 기후변화에 의해 소나무가 약화하고 쇠퇴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사우나’를 예를 들어 설명했다. “우리가 사우나에 들어가면 처음엔 좋지만 오래 있으면 못 견디고 나오잖아요. 지금 소나무는 사우나에서 나와야 하는데 못 나오는 상황인 거예요. 이미 저지대에선 소나무 피해가 많고,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점차 (소나무가) 사라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에요. 저도 연구를 계속해왔지만 소나무가 겉으로는 건강해 보여도 10년 전, 20년 전의 상태와 비교해보면 쇠약해져 있거든요. 가지나 잎뿐만 아니라 뿌리도 약해져요. 그렇게 되면 물리적으로 쉽게 쓰러질 조건이 갖춰진 거죠.”
한 식물분류학자는 “고산지대에 있는 침엽수 수종이 뿌리째 뽑히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울진 금강소나무가 뿌리째 뽑히는 건) ‘새로운 현상’”이라며 “나무가 수세가 약해졌거나 뿌리가 약해진 상황에서 눈까지 많이 와서 도복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아직은 가설이고 새로운 현상이기 때문에 관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도 “기후변화로 소나무가 점차 쇠퇴하면서 뿌리가 약해졌을 수 있다”며 “(이번 피해와 관련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폭설로 인한 피해는 앞으로 얼마든지 더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당장의 대응은 2차 피해를 막는 수준의 방안이 전부다. 김 소장은 “당장 도로변은 (금강소나무가) 넘어지면 위험하기 때문에 베어내는 등 조처해야 할 것 같다”면서도 “저희가 대응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이라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산림청은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과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한겨레21>의 질의에 “도로변 나무 제거와 제설 작업을 실시했으며, 6월 말 이전까지 계곡부 등 2차 피해를 예방할 계획”이라고만 밝혔다.
금강송 사이사이 누비던 산양도 살지 못한다
이번 폭설은 금강소나무에만 피해를 주지 않았다. 금강소나무숲길 안쪽에서 뿌리째 뽑힌 나무들 사이에 걸려 있던 산양을 발견한 건 나무를 관찰한 지 한참이 지나서였다. 취재를 마치고 내려가는 길에 탐방로 곳곳에 있던 산양 똥을 유심히 관찰하다 우연히 죽은 산양을 발견했다. 태어난 지 5년 정도 된 수컷 성체였다. 폭설 이후 눈이 녹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안쪽까지 들어오지 못한 탓에 구조가 늦었다. 서 위원은 “먹이를 찾아 점차 밑으로 내려오다가 눈 속에 갇힌 것 같다. 산양은 다리가 짧아 눈이 많이 오면 이동이 어렵다”고 말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된 산양은 전국에 1600여 마리(2020년 기준) 남은 것으로 집계된다. 이 중 100여 마리가 울진·삼척 인근에 산다. 그런데 올겨울 들어 벌써 울진에서만 7마리의 산양이 목숨을 잃었다. 6마리는 숨진 뒤 발견돼 국립생태원으로 옮겨졌고, 1마리는 소광리산림생태관리센터에서 발견해 산양보호협회로 옮겼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발견된 산양들이 대부분 눈 때문에 먹이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체중도 많이 빠진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발견된 산양은 국립생태원 우동걸 박사가 곧바로 현장으로 와 수습했다. 산양을 수습하는 동안 비가 내렸다. 수백 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금강소나무도, 수년 동안 금강소나무 사이를 누비던 산양도 더 이상 제자리에 없었다. 기후붕괴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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